제백석 이야기
글: 김봉석 서예가
2012년 세계미술시장에서 중국의 서화가 제백석(齊白石, 1863~1957)의 작품이 피카소의 작품가를 뛰어넘는 가격으로 판매되어 화제가 되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벼슬이 높았던 것도 아니고 학식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미술시장에서 인기있는 팝아트, 현대미술도 아닌 문인화풍의 제백석의 작품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백석이 성장한 19세기말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근대화 과정으로 전통 관념과 새로운 문물 간에 빚어지는 혼돈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당시 중국회화의 주도적 역할을 하던 문인화가들도 청나라와 함께 몰락해 가는 과정이어서 서구 예술은 중국의 화풍에도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극도로 쇠약해진 청나라 말기에 성장기를 거친 제백석은 계자원화보 등 고전의 답습에 일관하던 중국화풍에 서민적 풍속과 색채를 더한 화풍과 유희적인 화제로 문인화를 대중의 이해도와 거리감을 없앴고, 전각은 목수일을 하며 익힌 대담한 칼질로 신선하고 파격적인 자신만의 전각세계를 열었다. 전각을 새기듯 붓을 휘두른 서예 역시 제백석의 진면목을 엿볼수 있는데 제백석의 구태에 얽매이지 않는 창신의 모습은 예술가의 지향적 모습인 법고창신을 실천한 자세에서 출발한 것이다.
제백석의 회화는 문인화를 바탕으로 서민의 생활과 전통적 사고 등을 파고들어 세속적인 이면에 고상함을 추구하였다. 꽃, 새, 곤충, 물고기, 게 등의 소재로 먹의 농도, 선의 강약 조절, 붓의 과감한 터치를 선보이며 한가지 대상을 섬세한 붓놀림으로 꽃과 곤충이 절묘하게 어울리게 화폭을 꾸몄다. 또한 대담성과 단순성으로 요약되는 그의 회화는 60대에 독창적인 조형어법을 완성하여 사물의 본질을 묘사하면서, 내적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또한 순진한 서민적 정감, 유머감과 암시, 동심을 떠올리는 문장이 그림과 절묘한 조합을 이루어 생명력을 발현했으며, 강건한 특색을 더하며 쉼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였다.
세계미술시장에서 중국의 파워는 미국만큼이나 막강하다. 물론 중화사상과 애국심이 미술시장까지 영향을 끼쳐서 제백석의 작품가격에 거품이 끼기도 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제백석이 이루어낸 예술적 성과까지 폄하하진 못할 것이다.
중국인들이 자국문화에 대한 자긍심으로 중국전통문화에 대한 투자가 작품매매로 이어져 작품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의 전통미술이 미술시장에 홀대 받는 것은 시대적 상황일 수도 있으나 서양화를 전공한 대학원생의 작품가격에도 못 미치는 국내 근대대가들의 작품가격을 보며 미술시장에서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는 학생들 외에 동양화, 서예, 공예 등은 작가로서 활동을 펼치는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그림을 가르치는 미술대학의 지도방식도 바뀌어야 하겠지만 작가로서 희망적 요소를 발견하지 못해 작업에 열중하지 못하는 후배학생들을 목도하면 미술에 종사하는 선배로서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협소하고 세계미술시장에 중심이 될 만큼 큰 시장은 아니지만 제백석의 예에서 보듯이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 등 다양성의 시각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소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보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출처 : 경상일보(https://www.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