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謙齋鄭敾)  <  8폭 사찰도  > 1714
종이에 먹과 채색, 26×36cm ×8폭 (화집 1권)
5,000,0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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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謙齋鄭歚, 1676년 ~ 1759)
 
정선(鄭敾, 1676년 ~ 1759년)은 조선의 화가,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이다.

1676년(숙종) 1월 3일 한성부 북부 순화방 유란동(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아버지 정시익(鄭時翊, 1638~1689)과 어머니 밀양 박씨(1644~1735)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증조부대부터 한미해져 정선이 태어났을 때에는 집안의 가세가 많이 기운 뒤였다. 정선이 14세 되던 1689년에는 아버지 또한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그해 일어난 기사환국으로 노론이 실각하고 남인이 집권하면서 집안이 완전히 몰락하여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처지에 놓였다. 외가인 밀양 박씨 집안의 도움으로 서울에 머무를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급급하던 형편에 학업에 전념하기 어려웠던 정선은 일찍이 화가로서의 삶을 모색하였다.
그래도 양반 집안이어서 어릴 적 김창흡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의 평생지기 이병연도 김창흡의 제자였는데, 정선이 이병연과 동네에서 처음 만났는지 아니면 김창흡 문하에서 처음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의 우정도 유명하며 '시의 사천', '그림의 겸재'라고 일컬어졌다.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며 노년에 이병연의 쾌유를 빌며 그린 그림이 바로 인왕제색도이다. 한국 고유의 진경 산수화 화풍을 창시했고 뛰어난 진경 산수화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물론 이전 세대에 한반도를 소재로 한 그림이 전무하지는 않았지만, 정선의 그림처럼 주류로 내세워지지 못했으므로 정선은 하나의 화단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정선의 진경 산수화는 '우리 강산, 우리 것도 충분히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특징으로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풍경을 실감나게 과장시킨다는 점에서 감각적으로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