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구 <  정물  > 1959 

캔버스에 유채, 86.5 X 6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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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구 沈亨求(1908~1962) ​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현대 미술사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서양화가이자 미술 교육가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운봉(雲峰)이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출신이다. 아버지 심종협과 어머니 이협심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마을에서 한학을 익혔다. 백암초등학교를 5학년까지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을 했고, 경성 제2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1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입학, 1936년에 졸업하였다. 동경미술학교 재학 중인 1935년서부터 조선미술전람회(약칭 鮮展)에 출품하여 특선을 거듭하였고 이어서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 총독상을 받은 이래 여러 번 특선을 하였으며 1940년 추천작가가 되었다.
심형구는 이화여고 교사로 재직하면서 성악가 김자경과의 결혼으로 세인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으며, 8·15광복 이후에는 이화여대에 미술과를 창설하여 초대 학과장이 되었고, 1948년에서 다음해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부인인 성악가 김자경과 함께 미국에서 9년(1949~58)간 머무르는 동안 일리노이예주 아델피(Adelphi) 대학 회화과 초청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미국생활로 인해 화단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다. 1958년에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 교수로 복직하고 동 대학 박물관장도 겸하면서 국전 심사위원, 국전 초대작가 등으로 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