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미군부대에서 취급하는 맹독성 화학약품이 먼지가 많이 묻어있다는 이유로 무단 방출되고 한강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난다. 영화 괴물은 괴물에 의해 납치된 딸 현서를 구하기 위해 평범한 소시민 가족이 괴물뿐이 아니라 사회적 부조리와 무관심과도 대결을 벌여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화창한 오후의 한강고수부지. 현서네 가족은 고수부지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잠만 자는 철없는 아빠 박강두(송강호), 대학 운동권 출신으로 취직이 안돼 백수로 지내는 날건달 삼촌 박남일(박해일), 굼뜨고 느려서 슈팅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인 양궁선수 고모 박남주(배두나), 그리고 삼남매의 아버지며 현서의 할아버지인 매점 주인 박희봉(변희봉). 지지리도 못난이들 가족은 갑자기 출몰한 괴물에게 현서가 납치되자 현서를 구출하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을 벌여나간다.
독극물 방출을 감추려고 괴물 출현의 원인을 바이러스로 돌리는 미국, 현서가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강두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당국, 심지어는 현서의 핸드폰을 추적하기 위해 찾아간 남일의 선배마저 배신을 하는 등 이 사회는 현서를 구하고자하는 가족은 처절한 노력을 방해한다. 괴물과의 격투 끝에 할아버지 희봉은 괴물에게 희생당하고, 한강 노숙자와 함께 괴물을 쓰러뜨리는 데는 성공하지만 현서를 구하는 데는 실패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세주야 밥 먹자” 매점에서 자고 있는 세주를 강두가 깨운다. 세주는 현서가 납치되어 있을 때 함께 있었던 거렁뱅이 아이다. 세주는 현서가 없는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여운을 남긴다.
젖은 물 기운이 서늘한 진초록
영화‘괴물’의 전체적인 색은 진한초록이다.
초록이 밝을 땐 평화를 상징하지만 어두울 땐 불행을 상징한다.
영화 초반에는 밝은 색상의 초록 잔디로 평화롭고 낭만적인 한강을 짧게 표현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진한초록색 괴물의 출현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2000여장의 스케치를 하여 그중에 하나를 골라 50억을 들여 총제작비 110억의 절반가량을 차지한 진초록 괴물의 탄생은 그 동안 괴물 영화에 대한 불신을 안겨주는 요소였던 상상력과 표현력의 한계를 모두 뛰어넘었다.
악운, 기이함, 공포가 밀려오는 진초록은 괴물의 형상에 가장 맞는 색이다.
미술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악마형상으로 여겨지는 그림도 초록의 흉악한 몰골을 하고 있다.
초록은 독을 상징한다.
고대부터 알려진 빛나는 초록은 구리조각을 초에 넣어 만들었다.
구리조각을 초에 담가두면 구리조각에 초록색 녹이 생긴다.
이 녹을 긁어내어 풀이나 계란 노른자, 기름등의 접착제와 섞어서 물감을 만들었다.
이색은 구리 초록이라고 하였는데 독성이 있었다.
1814년 독일의 슈바인푸르트에 있는 한 염색공장은 구리 조각을 비소에 용해시켜 더 진한 녹색을 생산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초록에 슈바인푸르트 초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이 초록은 강한 독성을 숨기고 있었다.
초록의 독인 비소는 습기만 있으면 용해되어 나왔고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로 변했다.
초록을 좋아했던 나폴레옹의 죽음에서 분석결과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에서 다량의 비소가 발견되었던 점으로 보아 독살된 것이 아니라 만성적인 비소중독으로 죽었음을 알 수 있다.
독의 색을 상징하는 진초록 괴물이 한강다리 아래 어두운 시멘트 동굴의 검정과 매치되어 음산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진초록이 검정과 함께 있으면 더욱 무겁고 어두워져서 우울해진다.
심한 악취 때문에 숨조차 쉴 수 없었던 음침한 시궁창과 미로처럼 얽혀있는 하수구 깊은 곳의 썩은 오물이 흐르는 더러운 곳은 모두 불길한 진초록과 검정이 회색과 함께 비춰졌다.
그곳에서 촬영한 제작진의 고생은 극심했지만 효과를 보다 증폭시키기 위해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을 선택하여 화면가득 기막힌 장면들을 연출시켰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진초록 한강은 마치 성난 바다처럼 그 어떤 특수 효과로도 불가능한 세찬 물살을 만들어냈다.
특히 명장면은 박희봉(변희봉)이 괴물에게 잡혀간 손녀를 구하기 위해 비 오는 날 한강에서 괴물에게 총을 겨누다 죽는 장면이다.
평화를 상징하던 밝은 초록 잔디가 비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배경을 뒤로 하고 박희봉이 짓밟힌 분노를 폭발하는 모습과 좌절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시리도록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 장면에서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토록 처절한 장면을 연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색이 물에 젖으면 더욱 진해지고 느낌도 진해진다.
가족간의 사랑도 이 장면에서 가장 진하게 전해졌다.
봉준호감독은 이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형사 김상경과 용의자 박해일의 마지막 주먹결투 장면을 비 오는 날 촬영하여 보다 강한 분위기로 고조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영화 ‘괴물’에서 눈에 보이는 괴물은 그저 돌연변이로 탄생하여 보호해줄 부모나 개체가 없이 살아남으려는 본능하나로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외롭고 단순한 생명체로 나온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괴물은 그 괴물을 탄생시킨 허위와 기만으로 꽉 찬 외부 인간의 세계였다.
그것을 색으로 표현하면 더욱 흉하고 혐오스런 진초록이 될 것이다.
인간 유기체의 평형상태를 혼란에 빠트리는 비인간적인 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외부로 다시 돌아가길 원하게 한다.
그리고 무기력한 내부세계에 대한 저항감이 생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