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거 리
신비로운 푸른 회색빛 눈동자를 지닌 소녀 '치요'는 가난 때문에 언니와 함께 교토로 팔려가게 된다. 자신이 게이샤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녀를 시기하여 함정에 몰아넣는 '하츠모모'(공리)에게 겪은 갖은 수모 속에서 유일하게 친절을 가르쳐준 회장(와타나베 켄)을 마음에 담고 게이샤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마침내 그녀를 수제자로 선택한 마메하(양자경)에게 안무, 음악, 미술, 화법 등 다방면에 걸친 혹독한 교육을 받고 최고의 게이샤 '사유리'(장쯔이)로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은근히 그녀를 사모하는 기업가 노부(야쿠쇼 코지)와 남작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구애도 거절한 채 회장을 향한 사랑을 지켜가던 사유리. 하지만 더욱 집요해진 하츠모모의 질투와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회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사유리는 게이샤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졌어도 사랑만큼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회장과의 사랑을 확인한다.
특수 조명에 의한 매혹적이고 화려한 색채
교토 지역 특유의 평온한 햇살의 느낌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오고 싶었던 조명감독 스캇 로빈슨은 실크로 무려 2천5백 평에 달하는 하늘을 가리는 모험을 감행, 부드러운 천을 통해 비춰진 빛이 영상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실크 라이팅’ 조명기법을 만들어냈다. 가장 아름다운 게이샤의 얼굴이 보여지기 까지 제작진의 숨은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매혹적인 피부색감은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또한 게이샤 거리의 화려한 색채를 재현하기 위해 세트장에 동원된 전신주만 250개에 달하였다.
메이크업 색채
완벽한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선 독특한 화장법과 헤어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다. 손댈 수조차 없을 정도로 하얗고 투명한 피부, 뒤로 넘긴 머리와 보석같이 붉은 입술은 6주간 훈련받은 100여명의 신세대 메이크업 전문가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주인공 사유리에게는 사랑스런 색채의 메이크업을, 야심과 시기, 질투의 화신인 하츠모모에게는 강하면서도 싸늘한 색채의 메이크업을, 매력적이고 현명한 역할의 마메하에게는 우아한 색채의 메이크업을 하여 ‘게이샤의 추억’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게이샤의 눈 - 회색빛이 도는 파랑
이 영화에서 게이샤 ‘사유리’의 신비로운 눈빛을 파랑으로 표현하였다. 동양에서는 볼 수 없는 눈빛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준 것이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또 다른 귀족적인 파랑으로 울트라 마린 불루가 있다. ‘바다를 건너온 색’이라는 뜻의 울트라 마린은 로마 사람들이 ‘동양에서 온 신비’라는 의미로 귀하게 여긴 색이다. 파랑은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공상의 색이기도 하다. SF영화의 대부분이 파랑의 배경과 색채 타이틀을 사용하는데 파랑이 가진 상상과 무한한 공간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파랑은 잔잔한 바다와 같은 특유한 미의 이미지를 지닌다. 파랑이 진해질수록 더욱더 인간을 무한 속으로 빠져 들게 하고, 그 무한 속에서 순결을 동경케 한다. 파란색이 검은 빛을 발할수록 비인간적인 비통한 음향효과를 배가 시킨다. 그것은 영원한 무구와 같이 끝도 없고 있을 수 없는 진지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사유리는 파랑 눈동자를 더욱 깊이 있게 표현하기 위하여 검정의 진한 색으로 눈썹을 강조하였다.
게이샤란 일본어로 ‘기생’이란 뜻이지만 진정한 게이샤는 외모나 옷차림뿐 아니라 누구와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더라도 막힘이 없도록 해박한 지식과 화법도 갖추어야 한다.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기에 더욱 신비로운 게이샤는 미모와 천부적인 재능에 예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몸가짐에 있어서도 순결한 여자만이 게이샤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지만 사랑을 선택할 수 없는 게이샤의 슬픈 운명이 사유리의 파랑 눈빛에서 그대로 표현되었다.
게이샤의 입술 - 선명한 빨강
빨강의 심리적 요인은 자극성이 강하고 불안을 초래하고 신경을 긴장시키려는 생리적작용에서 기인한다. 빨강은 흥분도가 높기 때문이다. 빨강은 열렬한 사랑에서부터 탐욕스런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욕구를 나타내는 색상이다. 입술화장에서의 빨강 이미지는 노골적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색이기도 하다.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성적 느낌의 붉은 입술의 게이샤가 많은 남성들을 자극시켰다.
의상 색채
콜린 앳우드는 집 한 채보다 비싸고 1벌 만드는데 1년이 걸리기도 하는 기모노를 각 캐릭터의 개성, 지위에 맞춰 계절별로 다른 250벌의 의상이나 만들어내야 했다. 이중 청회색 신비한 눈동자와 함께 물의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 사유리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물결 무늬 기모노. 마지막 장면에서 사유리가 입은 푸른 회색빛 폭포 줄기가 쏟아지는 기모노는 최고의 게이샤가 되기 위해 거친 운명을 헤쳐 나가고 금지된 사랑을 간직해온 사유리라는 캐릭터 그 자체였다. 반면 질투와 복수의 화신 하츠모모에겐 실제 게이샤보다 강한 컬러와 패턴으로 장식된 기모노가 주어졌다. ‘하츠모모는 패션 그 자체죠. 패션에 따라가는게 아니라 아예 패션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캐릭터 입니다’는 게 콜린 앳우드의 설명. 약간 긴 소매 길이마저 반항적이고 강렬한 하츠모모의 성격을 반영하도록 배려했다니 모두 펼치면 8미터에 달하는 기모노 한 벌 한 벌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셈이다.
주인공이 어릴 때 빨간 기둥이 이어진 길을 달리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그때는 허리에 빨간 천을 두르고 뛰어 가는데, 많은 기둥만큼이나 파란이 있었고 몸에 지닌 빨강만큼이나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