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색채: 슈렉

‌글: 김순옥 (예술학 박사, 한국미술진흥원 원장)

줄거리
엄청나게 못생기고 커다란 얼굴을 가진 초록색 괴물 ‘슈렉은 지저분한 진흙으로 샤워를 즐기고, 동화책은 화장실 휴지 삼아 쓰며 성밖 늪지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만의 고요한 안식처에 백설 공주, 신데렐라, 빗자루를 타고 나는 마녀, 피터 팬, 피노키오 등 동화 속 주인공들이 다 쳐들어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것은 하루 종일 떠들어대는 당나귀 덩키.
알고 보니 얼굴이 몸의 반을 다 차지하는 1m도 안되는 짧은 다리의 파콰드 영주가 동화 속 주인공들을 다 쫓아낸 것. 결국 슈렉은 파콰드 영주와 담판을 지으러 떠난다. 하지만 일은 이상하게 꼬이고 결국 공주와 결혼해야만 하는 영주 대신 멀리 불을 뿜는 용의 성에 갇힌 피오나 공주를 구하러 떠나게 되는데, 무시무시한 성에 도착한 슈렉과 쫓아온 수다쟁이 덩키, 생각보다 깊은 용암 골짜기와 생각보다 무서운 성의 위압감, 센 불을 뿜는 용에 겁에 질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슈렉의 파워와 덩키의 미남계(?)로 피오나 공주를 빼오는데 성공한다.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사랑을 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으로는 20여년만,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으로는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깐느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이다. 깐느 영화제에 참석한 이들은‘관객 인기상이 있었다면 아마 슈렉이 탔을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슈렉’은 기존의 모든 고정관념, 선입관을 깨어버리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웃음을 선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초록
초록은 식물세계의 색이며 그것은 광선의 합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신비한 엽록소의 색이다. 태양광선이 땅위에 닿고 물과 공기가 각자의 원소를 발산할 때 그 결과로서 구체적인 형을 가진 초록이 생겨났다. 초록이 지닌 특유의 힘은 자연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초록계통에 둘러싸여지면 인체 내에서 유익한 신진대사 작용이 일어난다. 의학적으로 혈액 히스타민 수준이 올라가고 음식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감소하고 글루탐산소자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약화되고 비만세포를 안정시킨다. 초록이 청정제로서 하수체를 자극하여 점차 다른 선 계통을 자극해 가는 것이다. 생명력을 증대시켜 교감신경계에 유효한 초록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긴장을 이완시켜 주는데 도움이 된다.
영화 ‘슈렉’에서 주를 이루는 색은 ‘초록’이다. 주인공의 피부색과 공주의 드레스, 숲속 풍경과, 뱀과 개구리로 만든 풍선 등이 모두 초록이다. 특히 슈렉의 초록피부가 가장 인상적이다. 초록에 약간의 노랑기운이 첨가된 슈렉의 피부색은 명쾌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론 슈렉의 코믹하면서도 우스꽝스런 표정이 영화의 분위기를 발랄하게 만들었지만 만약 초록피부에 파랑기운이 감돌았다면 관객들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하거나 침울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초록을 색의 중심에 놓고 보색인 빨강을 대비시킴으로서 초록이 더욱 강조 되었다. 날개 달린 빨간 공룡과 파콰드 영주의 빨간 의상과 빨간 용암 골짜기와 빨간 카펫까지 스릴 넘치는 장면은 모두 빨강으로 표현함으로서 긴박감 있는 장면을 고조 시켰다. 그러면서 그 긴박감을 평화의 상징인 초록으로 중화 시켰다.
슈렉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가운데 최고로 인정받게 된 것은 애니메이션인 이 영화가 실사영화보다 영화적 뿌리를 더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다. 스콜세지의 활달한 카메라 움직임이나 스필버그의 풍경묘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그러하다. 등장인물의 입체적인 모습은 빛의 반사와 굴절까지 정교하게 묘사 되었고, 자연스런 동작 하나 하나는 마치 실제로 살아 있는 듯하다. 컴퓨터 특수 기법으로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보여준 슈렉은 기술적인 차원보다도 기존 관습에 발을 맞추면서도 적당하게 파격을 취하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가벼운 반역정신이 이 영화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다. 동화의 뻔한 스토리와 관습을 깨면서 현대 영화를 패러디하는 예상치 못한 장면들은 기발한 상상으로 웃음의 판타지로 이끌어갔다. 등장인물로 하여금 조안 제트나 몽키스의 록 음악에 맞춰 춤을 추게 하는가 하면 뱀과 개구리로 풍선을 만드는 유의 기묘한 유머감각을 거침없이 구사하는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대중문화 코드에 어필하는 재치가 돋보이고 새로운 방식의 해피엔딩을 보여 주었다. 영화감독 비키 잰슨과 앤드류 아담슨은 관객들로 하여금 못생기고 뚱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초록괴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초록괴물 ‘슈렉’을 보는 동안 관객들도 초록괴물이 되어 엽기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행복을 꿈꾸게 하였다.


PDI/드림웍스는 '슈렉'을 통해 '개미'가 아닌 '인간'을 표현하는데 도전했다. 곤충이나 장난감과는 달리 섬세하고 복잡한 얼굴 표정과 다양한 동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제대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덩치 큰 괴물 '슈렉'에서부터 1m도 안되는 단신 '파콰드 영주'까지 다양한 사이즈에, 박진감 넘치는 장면과 웃고 울며 날기까지 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자연스러움을 표현해야 했다.
기존의 시스템으로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PDI/드림웍스는 인간의 피부,근육, 뼈가 다층적으로 표현 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4년이라는 제작 기간동안 근육의 움직임에서 옷의 주름까지 잡아낼 수 있는 '쉐이퍼'와 표면의 빛과 그림자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질감을 나타낼 수 있게 해 주는 '쉐이더', 일반 그린 하우스처럼 나무 및 식물들을 길러내 숲을 형성하도록 해 주는 '디지털 그린 하우스'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캐릭터들과 주변 환경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실사의 합성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영화 속에서 슈렉의 꿈뻑이는 눈, 피오나 공주의 옷자락의 움직임, 덩키의 털이 바람에 움직이는 것, 주변 나무들의 움직임 등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움에 다시 한번 탄복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