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색채: 오페라의 유령

‌글: 김순옥 (예술학 박사, 한국미술진흥원 원장)

줄거리
수십 년 전의 오페라 하우스.
리허설 연습 중 갑자기 무대장치가 무너지고 유령의 메세지가 전달되자
'크리스틴'이 무대에 서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
공연은 성공리에 끝나고 이를 지켜보던 귀족 청년 라울은 그녀가 어린 시절 친구였음을 기억하고 사랑에 빠진다.
한편, 축하객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크리스틴에게 음악의 천사라 자칭하는 유령이 나타난다. 크리스틴은 호기심에 유령의 가면을 벗겼다가 그의 흉한 몰골에 놀라지만 곧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유령의 소동이 있은 후 크리스틴과 라울은 비밀 약혼을 한다.
오페라하우스의 새로운 개장을 축하하는 무도회에 나타난 유령은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승리의 돈주앙’을 오페라 하우스 재개막 공연작으로 할 것을 강요한다.
오페라가 공연될 경우 유령이 무대에 등장할 것을 직감한 라울은 그 기회에 유령을 사로잡고자 제안을 받아들인다.
삼엄한 경비 속에 막이 오른 ‘승리의 돈주앙’.
크리스틴은 어느 새 남자 주인공이 유령으로 바뀌었음을 알아챈다.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크리스틴은 유령의 가면을 벗겨버린다. 순간 유령은 크리스틴을 납치해 지하 은신처로 달아난다.
크리스틴을 구하러 나섰다가 마법의 밧줄에 목이 매달린 라울.
질투심에 불타오른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자신과 영원히 같이 살거나
라울의 죽음을 선택하라고 한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유령을 이해하게 된 크리스틴은 그에게 키스를 하고 유령은 라울을 풀어준다.
크리스틴과 라울을 태운 배는 멀어져 가고 유령은 크리스틴의 이름을 애닯게 부른다.
군중들이 유령의 은신처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유령의 하얀 가면뿐이었다. 그 후 아무도 그를 다시 보지 못한다.


흑백의 현재와 컬러의 과거
대부분의 영화는 과거를 회상할 때 화면을 흑백으로 표현하고 현재를 컬러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과거를 컬러로, 현재를 흑백으로 극명한 색채대비를 이루었다.
하나는 시대적 분위기의 차이다.
그것은 화려했던 과거와 몰락한 현재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영화롭고 역동적이며 풍요로웠던 빅토리아 시대는 화려한 컬러 색상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으로 대표되는 음산한 20세기 초반은 흑백으로 표현된다.
두 시대 사이에 가로 놓인 장벽은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보여준 남북전쟁 전과 후의 변모된 타라 농장의 모습만큼이나 극적으로 대비된다.
흑백과 컬러가 상징하는 또 하나의 차이는 열정적인 사랑을 불태웠던 젊은 날의 라울과 사랑하는 연인이 없는 세상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살아가는 70대 노인 라울의 차이다.
사랑이 없는 공허한 삶, 크리스틴이 세상을 떠난 후 과거를 회상하며 사는 70 노인의 삶을 단조롭지만 탁하지 않은, 부드럽고 잔잔한 새벽안개와 같은 모노톤의 화면을 통해 표현해 주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의 상징 - 황금색

영화 내내 관객들의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하게 하는 스펙타클한 화면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황금색으로 치장한 오페라 무대와 샹들리에다.
특히 영화의 도입부에 쇠락한 오페라극장에서 과거를 추억하던 라울의 회상에 따라 쌓였던 먼지와 거미줄이 사라지는 장면이 있다.
샹들리에의 불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모노톤의 극장이 영화로웠던 과거의 황금빛 무대로 변하는 장면이 펼쳐지는데, 이 영화의 백미 중의 백미이며 쇠락과 풍요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교차시킨다.
본래 황금색은 태양, 신의 힘, 광명의 빛, 불사, 창조 이전의 빛으로서의 신, 최고 가치, 생명의 질료, 불, 영광, 남성 원리를 나타낸다.
호메로스의 표현에 의하면 제우스의 황금 그물은 하늘과 땅을 묶어주는 굴레이며(일리아드), 플라톤에 의하면 황금색은 태양과 이성이다.


호사스런 상상력을 발휘한 비주얼 - 의상의 색채

영화 속 주인공의 이미지가 뚜렷하여 같은 색상의 의상이라도 전혀 다른 이미지로 부각된다.
같은 검정 옷이라도 유령이 입었을 땐 어둠과 절망, 죽음, 증오가 베일에 가려진 듯한데,
라울이 입었을 땐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세련되고 능력 있는 강한 남성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같은 빨강이라도 유령의 빨강 옷은 질투와 복수, 분노와 죽음을 나타내지만 크리스틴의 빨강은 사랑스럽고 우아한 여성의 미를 뿜어내고 칼롯타는 천박하고 경망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양 역시 같은 색이지만 다른 느낌을 준다.
유령의 하양가면과 의상은 공허하고 외로워 보이는 분위기가 들지만 라울의 하양의상은 귀족의 고귀한 분위기나 드러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양이 가장 눈부셨던 것은 크리스틴이 새로운 프리마돈나로 등극하는 장면에서 보여 지는 하양 레이스 드레스다.
하양 펄 메이크업과 하양 드레스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크리스틴의 순수한 매력을 하양이 완벽한 매개체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여 영화의 극적 구성과 잘 맞아 떨어지게 했다.
이 영화는 1억 달러를 쏟아 부은 빛과 예술의 향연 속에서 5천여 벌의 옷을 통한 복고의 재창조를 하였다.
패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대로 기록되는 크리놀린 시대에 맞게 실루엣의 미를 맘껏 과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숨 막히는 감동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