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색채: 작업의 정석

‌글: 김순옥 (예술학 박사, 한국미술진흥원 원장)

‌‌줄거리
피부 관리실에서의 첫 만남을 통해 민준(송일국)과 지원(손혜진)은 첫눈에 상대를 알아본다. 준수한 외모와 좋은 환경으로 인해 이들의 작업은 언제나 쉽게 통했지만 두사람은 서로의 속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동안 갈고 닦았던 비장의 작업들이 결코 호락호락하게 먹히지 않는다.
치밀한 물밑 작업을 거쳐 본격 작업 대결에 들어간 민준과 지원. 그러나 백발백중 먹혔던 그들의 작업은 자꾸만 꼬이기 시작하고, 최고의 작업 선수라는 자부심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은 한번 시작한 승부는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작업계의 진정한 프로이다. 마지막 격전장 제주도에서 결정적인 승부를 건다. 이때 민준은 지원을 감동시켜서 하나가 되는데,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한 이들은 서울에 올라와 각자 홀가분하게 다른 상대를 찾는 작업에 나선다. 지나치게 호화스러운 장면이 현실에 맞지 않고 인스턴트사랑을 다룬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코믹, 멜로의 진수를 보여준 재미있는 작품이다.


빨 강
이 영화 포스터에는‘지원’역할을 맡은 손예진의 빨강원피스와‘민준’역할을 맡은 송일국의 빨강넥타이가 재미있는 표정과 함께 코믹, 멜로영화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여우와 늑대를 연상시키듯 홀려주고 빠져주는 작업 남녀의 본심을 공개하면서 자극적인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서 빨강을 사용했다.
선수끼리 만나서 절대내숭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는 지원을 무림의 고수처럼 나타내기 위해 옛날 의상을 입고 상대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빨강 양산을 들고 있다.
빨강은 불이나 피를 연상시키므로 정열을 상징하고 위험이나 경고의 의미가 있지만 이처럼 공격적인 이미지도 띈다.
권투선수들이 시합 때 빨간 글러브를 하는 까닭은 색이 주는 공격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빨강은 내면적인 주의 집중을 분산시켜 밖을 쏠리게 한다.
미국 풋볼의 락커 룸은 온통 새빨갛게 칠해져 있다고 한다. 

선수들은 그 새빨간 방에서 투지를 다진 다음 단숨에 그라운드로 뛰쳐나간다. 
운동경기 중 가장 격렬한 이 경기는 빨강의 자극으로 인해 더욱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지원이 친구와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상품을 타기 위해 춤 경연대회에 나가서 춤을 출 때도진한 빨강블라우스를 입었다.
여기서 빨강의 의미는 정열과 섹시, 그리고 흥분이다.
사람은 피를 보면 흥분하듯 빨강색만 보아도 흥분한다. 사람의 마음을 흥분케 하는 빨강은 에너지 발산의 색인 것이다. 

스페인의 투우에서 빨강천이 황소를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관중들을 더욱 강하게 끌어 들이게 한 지원의 빨강 의상은 결국 상품인 유럽왕복권 티켓을 받게 하는 행운을 만들었다.
빨강은 이처럼 환희와 행운을 불러 온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부터 설날에는 빨간 띠에 황금글씨로 새해의 행운을 빌었고, 아이들은 돈이 든 빨간 복주머니를 선물로 받곤 하였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로맨틱하지만 코믹한 장면이 많이 나와서 박장대소를 하게 한다.
화투에 나오는 빨강의상에 검정 모자를 쓴 점쟁이의 코믹연기도 재미있다.
빨강계통의 색들은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선호되기 때문에 심리요법에서는 이러한 색들을 소심증이나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이용한다.
‘작업의 정석’은 마음이 어두웠던 사람들도 잠시나마 마음의 짐을 잊고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다. 전체적으로 밝고 따스한 분위기와 함께 사랑의 빨강이 느껴지는 장면들로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