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색채: 청연

‌글: 김순옥 (예술학 박사, 한국미술진흥원 원장)

줄거리
‘청연'(靑燕) 은 일제시대에 최초의 여자비행사인 박경원이라는 인물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주인공‘경원’은 어릴적부터 꿈이었던 비행사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비행학교를 다니게 되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택시 운전을 하면서 돈을 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택시 손님으로 태운 한국인 유학생 '지혁'을 만나게 된다. 지혁은 성실하고 강하게 살아가는 경원에게 끌리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한다.
몇 년 후 경원은 첫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유명한 2등 비행사가 되었다. 제대 후 경원이 있는 비행학교의 장교로 지원한 지혁과 경원은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비행대회 출전을 기대하던 경원은 일본 최고의 모델이자 외무대신의 든든한 배경을 지닌 ‘기베’로 인해 비행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된다. 경원은 실력을 겨루는 시합도중 사고를 당한 기베를 구해주고, 이후 기베는 경원의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경원은 기베에게 출전권을 양보했지만 동료 조종사인‘세기’의 불의의 사고로 고도 상승 경기에 대신 출전하게 되고, 위험한 비행 끝에 아슬아슬하게 대회에서 우승한다.
연인보다 하늘을 향한 꿈을 더 소중히 여기기에 지혁의 청혼도 거절하고 사랑의 아픔과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경원은 꿈을 향해 노력한다.


파랑 - 자유를 염원하는 창공의 색
‘청연’은‘파란 제비’란 뜻이다. 영화의 주인공인‘경원’의 비행기 이름이기도 하다.
파랑은 예부터 창공을 향한 푸른 꿈의 색으로 여겨왔다.
청춘이라든가 청년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듯 젊은이의 기상과 호연지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파랑을 사용했다.
파랑은 개념적 의미로 볼 때, 정열을 진정시키거나 잠재우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신성함, 진실, 조화, 진정, 희망의 색으로 정의되는 색이다. 탁 트인 시원함, 상쾌함, 맑음을 느끼게 하는 파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청량감을 준다.
파랑이란 이름에는 하늘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으며 밝은 청색만을 하늘색 또는 스카이(sky)계로서 독립적으로 취급하는 일이 많다. 스카이라는 말 앞에 수식어가 붙어서 페일 스카이(pale sky), 브라이트 스카이(bright sky)라고 할 경우는 밝은 청색계통을 나타내는 총칭된다. 하늘색이나 스카이 블루나 코발트(cobalt)라는 통칭은 스카이계 중에서 아주 맑은 하늘을 연상케 하는 색의 생명이다. 제니스 블루(zenith blue)는 하늘 꼭대기라는 뜻으로 선명한 파랑이다.
독일의 작가 휠더린은 ‘파란색이 그리워지면 나는 종종 하늘을 올려 보았고, 성스러운 바다 속을 들여 보았다. 그러면 마치 한 혈연의 죽은 영혼이 나에게 손을 벌리듯이 마치 고독의 고통이 신성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모두와 함께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언가 영적인 자기망각 속에서 자연의 일체를 향해 귀향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생각, 최고의 기쁨, 신성한 신의 정상, 영원히 조용한 장소이다’라고 말했다.
성당의 둥근 지붕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파랑이다.
1911년 프란츠마르크, 칸딘스키, 알프레드 쿠빈, 가브리엘 뮌터는 청기사라는 화가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이 ‘청기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말을 즐겨 그렸으며 파란색을 가장 좋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란 말들을 그렸다. 파랑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이념의 색이다. 먼 곳과 그리움의 색인 파랑은 비현실적인 색, 현혹하는 색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이미 한 남자의 여자로 남기에는 꿈을 향한 소망이 컸던 '경원'은 '지혁'의 청혼을 거절하고 평생의 꿈이었던 고국방문 비행을 앞두고 힘겨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사랑, 친구, 동료… 모든 것을 잃은 경원에게 남은 것은 비행뿐. 모든 것을 잊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경원은 슬픔을 딛고 그녀의 비행기 청연에 올라 푸른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한다.
영화 속의 파랑처럼 피카소가 표현하는 파랑도 슬픔으로 나타났다. 우울한 시기를 겪었기에 빛나는 광휘의 시기를 발휘하였다. 피카소의 파랑은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그 이상의 심연의 색이며 동시에 인간이 가장 높이 다다를 수 있는 초월적인 하늘의 색이다.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절망과 동시에 희망의 시대이다.
해방을 향해 힘차게 내딛는 정신의 색에는 ‘자족’을 향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파랑이 어울린다.
파랑은 신성한 색, 영원한 색이다. 지속되기를 바라는 모든 것, 영원히 계속되어야 할 모든 것에 파랑을 결부시키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보아오던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여주인공의 마지막 비행이 일본의 만주국 승인을 기념하는‘일만친선 황문위군 일반연락비행’이었다는 점과 그가 타던 비행기‘청연’이 체신장관의 선물이라는 염문설과 함께 박경원의 친일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영화이다. 한국에서 친일파가 영웅시 되는 영화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연의‘파랑’에 대해 글을 쓰기엔 민감한 사안이 있어 파랑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주인공의 ‘색깔론’부터 다뤄야 할 것 같았다. 다만 꿈을 향해 노력할수록 조국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의 비극과 시대의 비극을 그리고 싶었다는 윤종찬 감독의 취지에 맞춰 그저 화면 가득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파랑을 설명하였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집요한 운동의 파랑을 연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