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태 Choi, Ye-Tae

‌하롱베이 60.6x50.0cm Mixed media on canvas


참혹한 아름다움-최예태 미학의 비밀

글: 서승석 (미술평론가·불문학 박사)

산이 좋아 산을 그리다가 마침내 그 장엄한 산이 되어버린 사람, 이 분이 바로 울림 최예태 화백이다. 그의 산은 사람을 닮았고, 사람은 산을 닮았다. 우주적 유혹으로 충만한 그의 예술세계는 시의 탄생을 예고한다. 최예태의 회화는 처절한 미적 감동을 유발한다. 이토록 참혹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그 근간은 과연 무엇일까?
빛은 어둠으로부터 온다. 색채는 빛으로부터 온다. 태양으로부터 우리 눈에 당도하여 빛이 색채로 인식되기까지, 빛은 우주 속에서 8분 20초 동안 허공을 여행하며 오존층, 공기와 먼지 속을 통과하며 산란해서 우리 시각에 무지개빛을 선사한다. 일찍이 괴테가 ‘색채학’에서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라고 규명하였듯이, 빛은 긴 여행 중 산고의 고통을 치르고 비로소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적색과 청색, 그리고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비교적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을 선호하는 최예태 회화의 궁극적인 테마는 빛과 어둠의 싸움이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붉은 산 ‘알래스카의 산(1991년)’이거나, 주홍빛 산의 연작 ‘붉은 산의 판타지(2003년)’, 푸른 산 ‘신록의 인상(2013년)’에서도, 그는 검은 산이거나 누워 있는 나부를 닮은 검은 형체를 전면에 깔아놓으며 명암대비과 보색대비 효과로 화면의 깊이와 극적인 인상을 획득한다. 결국 그의 산은 대부분 크게 나누어 3단계로 구성 된다 : 순수와 신성함을 향한 기도 같은 순백의 만년설 아래, 뜨거운 삶을 향한 절규 같은 다홍빛 혹은 싱그런 연두빛 생의 예찬이 흐르고, 맨 아래 검은 죽음의 그림자가 근엄하게 드리워진다.

만경평야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최예태는 가업을 이어받기를 바라셨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농토를 둘러보곤 하며 농업을 배웠다. 벼가 익어가는 논에 들어가 피를 뽑다가 뱀을 밟기도 하고, 거머리에 물리기도 하였다. 그 몸서리쳐지는 뱀의 뭉클함은 지금도 생생하여 도저히 잊어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논두렁에서 두꺼비를 물고 있는 뱀을 만났다. 한동안 미동도 없이 그를 노려보던 뱀은 천천히 두꺼비를 목으로 한 입 한 입 넘기기 시작했다. 잔뜩 겁에 질려 이를 지켜보던 그 순간은 그가 처음으로 죽음을 직시한 사건이었고, 농촌을 떠나 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된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그 이후 그는 뱀이 등장하는 꿈을 수없이 꾸었고, 그 무서운 뱀의 눈초리는 악몽처럼 집요하게 그를 따라다녔다. 문득문득 그를 엄습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어쩌면 그 사건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최예태의 회화적 참혹한 아름다움의 뿌리는 바로 이 유년의 추억에 뿌리가 닿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이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안나와 성모자’를 분석하며 화가의 어린 시절 ‘독수리 꿈’을 바탕으로 유추해 보았듯이, 최예태의 ‘뱀의 꿈’은 작품 ‘팜므 파탈(2005년)’, ‘묵시적 사유(2010년)’, ‘태양을 삼킨 여인(2017년)’ 등에 대해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시도해볼만한 단서를 제공한다. 심층적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최예태 회화의 진수는 탁월한 색채 감각에 있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 못지않게 현란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창조되는 그의 우주는 신비로운 색채들이 서로 부르고 화답하며 아름다운 화음을 불러일으키는 조화로운 세상이다. 사물의 고유한 형태나 색채에 구속되지 않고 대담한 파괴와 재구성을 통해서 화폭에 새롭게 탄생하는 그의 자연은 작가의 심오한 사유의 산물이다. 시공을 초월한 그의 상상력은, 마티스가 “그림에 공간과 깊이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C’est l’imagination qui donne au tableau espace et profondeur. - Henri Marisse)”라고 한 말을 상기시킨다.

“색채를 혼합하는 일은 작가의 자존심이다”라며 최예태는 조색에 사활을 건다. 종교적 정화의식을 방불케 하는 그의 조색과정은 가히 괄목할만하다. 그는 튜브의 원색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 전에 원하는 색에 도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색을 혼합해가며 공들여 나이프로 물감을 이겨 섞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나이프를 돌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신의 경지에라도 이를 듯 초연하다. 이렇게 정성스레 만든 색채의 조각들이 모여지고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경이로운 산이 솟고 심해의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화음 위에 화음이 쌓이며 교향곡이 심오하게 완성되어 가듯이...

최예태는 83세의 연세에도 새벽부터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청색과 녹색의 대비가 돋보이는 대작 ‘성산일출봉(1000호, 2020년)’을 그리며 태권도 유단자의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인내심으로 코로나19 시대의 난관을 극복하고 있다. 프랑스와 캐나다에 유학한 바가 있는 그는, 아직도 사전을 찾아가며 불어를 연마하고 프랑스 작가들의 어록이나 속담 등을 외우며 지적 탐험을 계속하며 건실한 삶의 태도로써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필자와 2019년, 프랑스 ‘제31회 마니에국제미술페스티벌’ 초대 의장국 대한민국 대표로서, 부채전을 개최하여 한국의 고전미를 선보이고, 심사위원으로 역임되어 마니에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유럽에서 최고로 권위 있는 미술잡지 ‘유니베르데자르Univers des Arts’를 비롯한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부디 건강하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진출을 도모하여 전 세계에 한국미술의 위상을 드높이기를 간절히 빈다
 

최예태
(1939년 崔禮泰, 호: 울림 蔚林)는 국전 추천작가 및 동 초대작가 지정.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및 동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예술상, 대한민국 미술인 특별상(장리석상), 2016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2015년 성신여자대학교에 최예태 미술관이 설립됐으며, 2017 앙데팡당전 심사위원장과 2019 프랑스 마니에 국제아트페어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사)한국미술협회 상임고문위원장 및 KAMA 한국현대미술가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승석

미술평론가이자 시인 서승석 불문학 박사는 1995년 시집 ‘자작나무’ 출간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해 2013년 ‘유심’ 평론부문에 등단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4-소르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석사,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수원대학교 겸임교수 및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자작나무’, ‘흔들림에 대하여’, ‘사람 사랑’, ‘그대 부재의 현기증’과 번역서로 파블로 피카소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