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Kim, Heung-Sou

‌망부가 116X189cm mixed media 1992
하모니즘의 창시자 - 김흥수 화백

글: 김순옥(예술학 박사)

김흥수 화백은 구상과 비구상의 이질성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 완성시킨 “하모니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누어진 미술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음과 양이 하나가 되듯 상반된 극을 접목시켰다. 
한쪽에 치우치거나 얽매임이 없는 조형세계를 만들기 위한 의도가 완전한 조화를 이룬 새로운 화풍으로 탄생된 것이다.
동양사상의 모태가 되는 정신세계는 추상으로,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모습은 구상으로 표현하였다.
모자이크 기법에 착안하여 화면을 색과 면으로 분할해서 하나의 완전체가 되는 독특한 방식의 화법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추상의 우연적인 요소와 사실표현의 구체적인 요소가 하나의 작품 속에 조화를 이룰 때 작품에 대한 설득이 납득 되고 공감은 더 깊어진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색채와 질감으로 에로틱한 여성누드와 서구적 감각의 분위기를 기하학적인 문양과 함께 고조시켰다.

김화백은 예술의 창조와 입지를 위한 오래전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추상회화의 출현 그 자체만으로는 나의 흥미를 끄는 초점이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새로운 양식을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다음단계의 또 다른 비전을 찾아서 누구보다도 먼저 확실한 입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동란을 겪은 젊은 작가로서의 나의 생각이었다.”

김 화백은 191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36년 조선미술대전(선전)에 특선하면서 일찍이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1944년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뒤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장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를 지냈다. 
화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1955년 감행한 프랑스 파리 유학이었다. 
이전까지 한국적인 향토적 주제와 인물 등의 구상화를 그렸던 김화백은 유학 뒤 당대 서구미술의 영향을 받으며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파리의 그랑드 쇼미에르 미술연구소와 미술아카데미 등에서 수학한 7년 남짓 동안 야수파, 입체파 등의 서구 근대사조와 클림트, 모딜리아니의 작품 등에 심취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김화백은 색채의 현란한 감각과 본능적 터치를 발산하는 반추상 누드화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1961년 귀국 당시 그의 도발적 화풍은 평단에서 이단아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동료와 후배 작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여성 누드는 이후 말년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소재가 됐다. 
1977년에는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꾀하는 조형주의 미술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신여대 교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낸 김화백은 1990년대 이후 작업에 전념했다. 
2000년대 초 세 차례 수술을 견뎌내며 구순을 넘어서도 열정적으로 작업과 전시를 계속해왔다. 
2010년에는 91살 역대 최고령으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 선출돼 눈길을 모았다.
향년 96세에 작고한 고 김흥수 화백은 유족으로는 3남1녀가 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난 예술적 동반자이자 부인인 고(故) 장수현(1962∼2012) 김흥수미술관장은 2012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43세 연하 제자와의 결혼으로 방송을 통해 화재가 된 김흥수 화백의 예술과 인생은 숱한 이야기를 남기며 세상의 관심을 받아 왔다.

2004년 필자가 기획한 경향신문사의 경향갤러리 개관기념전에 김흥수 화백은 “망부가”를 출품하고 미술발전을 기원하였다.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김흥수 화백의 독창적인 화법은 세계 미술계로부터도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흥수 (金興洙, 1919년 11월 17일 ~ 2014년 6월 9일)
‌함경남도 함흥 ‌

수상
2011년 제20회 석주미술상 특별상
2005년 제50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부문
1999년 금관문화훈장

■경력
2010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이중섭 미술상 심사위원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