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성 Kang, Tai-Sung

‌해율(海律) 1966 대리석 69x106x79cm (청와대 소장)
열린 공간 속의 조각미  

글: 유준상(미술평론가)

      • 물질은 상상한다.

        • 미리 되어있는 조각이 아니면 훌륭한 조각이 나오지 않는다는 로댕의 말은 유명한 구절이다. 물이나 공기로 조각을 만들겠다는 사람은 없다. 그렇듯 미리 되어있는 조각이란 조물주가 창조한 물상(物象)을 뜻하며 그러한 물질을 소재로 해서 조각가의 일이 다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바위를 바위로만 보지 않고 흔들바위라든가 장군바위 혹은 그림바위 등의 이름으로 연상하는 사람의 상상력과 관련되는 조각관을 의미한다.  물질을 물질로만 보지 않고 정신적 영상으로 복사해서 의식하려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관련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석굴암의 불상만 해도 그렇다. 그것은 조물주의 조각품인 화강암의 바다 위에다 어떤 의미를 부여해보려던 신라의 조각가에 의해서 인간화된 조각작품의 예이다.
           공기나 모래 같은 소재로 조각을 만들겠다는 조각가는 우선 없다. 그것은 이미 되어있는 조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이 오늘처럼 아름다운 외계(外界)가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의 경과가 있었을 것이다.
          몇천 몇백 만년이란 아득한 발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 기원을 우리들은 모른다.
            그것을 알아내는 인식의 장치는 인간 이상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으로서의 소재인 바위나 나무 혹은 흙 등에 작용하기 시작한 인간의 역사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그 기원까지를 소급해 볼 수는 있다. 스토운·헨지라든가 고인돌 등은 이러한 이정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조각의 기원(起源)은 아니지만 조각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조각가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길잡이는 필요하다. 강 화백의 경우도 그렇다. 그의 조각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조각의 생성과 관련지어지는 테두리 안에서의 강 화백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해서 그의 조각을 이해한다는 건 그를 발견한 단계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가 왜 조각을 시작했는지에 기원은 그 자신의 사사로운 개인적 역사인 동시에 인류의 역사의 기원으로까지 소급되며 이것을 우리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 자신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조각을 한다
          일반적인 관례로서 강 화백이 발견되는 것은 1966년의 구국전(舊國展)에서 최고상을 획득하면서부터이다. 신문이나 TV등이 그의 존재를 크게 보도했고, 그에 관한 기사가 일반 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그의 조각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이것은 그의 조각에 관한 인식이 일반화되었다는 뜻이지만, 전문적인 입장에선 전기한 연대(年代)가 특정한 미학적인 가치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로 미술평가의 기준이 된다고 믿어버리는 건 너무 성급한 이야기이지만, 어떻든 이해를 기점으로 해서 강 화백과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들의 조각관을 인도하는 새로운 길잡이로 등장하게된다.  즉 우리는 그를 발견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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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物質의 人間化 그가 출품하여 최고상을 획득한 작품은「해율(海律)」이라는 제목의 대리석 조각이었으며 마치 파도를 타고 흐르는 듯한 두 인물(母子像)의 조각상이었다. 이 작품은 대리석이라는 견고한 물질이 소재가 되어있는데도 매우 유연하고 신선한 상상력 으로 환기되는 설화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앞에서 말한 바처럼 바위를 그 물질대로 느끼지 않고, 흔들바위라든가 장군바위 혹은 그림바위라는 연상으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경우처럼, 그의 「海律」은 「돌」이면서도「바다」의 원상(原像)을 중첩해서 느끼게 하는 인간화된 대리석이라고 설명 될 수 있겠다. 그렇듯이 여기서의 인간화란 이미지의 실제적인 구현을 뜻하며, 이것은 바로 인간에 관한 깊은 비의(秘義)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조각가 마이욜은 40대에 본격적인 조각가가 된 사람이었는데 그는 늘 여체(女體)만을 다루었다. 사십 년 동안을 일관해서 다룬 게 여체였는데, 그것은 그의 주제였다기보다 그의 상상력을 유발하는 모티브였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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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환조로 조상(彫像)된 이들 여체에 붙여진 제목은 「지중해」, 「밤」, 「강」, 「일·드·프랑스」등으로 되어있다. 가령 「일·드·프랑스」를 예시하면 그것은 그지없이 아름다운 안정을 보여주는 입상(立像)인데 이 여체에서 푸르게 기름진 조화(調和)로서의 프랑스의 상징(象徵)을 감지하게 된다.
           싱싱하게 무르익은 한 여성의 알몸이 두 팔을 뒤로 재치면서 수줍은 듯한 긍지의 표지인양 앞가슴을 내밀면서 앞으로 나서려는 듯한 보행의 자세로 서있다.
          이러한 여체를 대하면서 어떤 육욕(肉慾)의 감각보다 뭔가 고귀하고 소중한 것으로서의 구성을 인식하게되는 건 왜 그럴까.  대체 사람의 상상력이란 어떤 기능일까.
          (육욕의 감각이란 속임수의 말투였다. 우리들의 감각은 그것이 풍만한 여체의 기전에 한낱 쇠붙이에 불과하다는 걸 화각하고 있다.
           유형에 의해서 환기되는 이른바 무의식의 모태로서의 「지중해」라든가 「일·드·프랑스」등 다분히 유럽적인 연상으로서의 문화요인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으면, 강 화백의 연상은 보다 발생학적인데서 환기되는 물질관이라고 해야겠다.
          마이욜의 주제는 소재와의 엄격한 구별 없이 전수되어온 만물의 척도로서의 인체, 곧 유럽의 고전적 모델을 그야말로 이용했던 천재라고 해야하겠기 때문이다.
           물론 강 화백보다 한 세기 반이나 앞서서 조각을 한 마이욜과 비교한다는 것은 크게 무리가 있다. 다만 마이욜의 조각 발상이 지중해문명권이라는 매우 유복하고 기름진 환경 속에서의 소급의식인데 반해서 강 화백 그것은 외로운 선조(先祖)회귀(回歸)의 양상이 깊게 감지된다는 비유이다.
          이제까지 보여준 그의 조각이 어떤 주제로 일관되어오지 못하고 혹은 일정 율의 소재의식으로 반영되지 않고, 여러 수시 적 양상으로 나타났던 것은 이러한 인과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 손의 幻想

        • 1970년대 초반부터 보여준 강 화백의 변모는 가령 「화(和)」, 「해경(海景)」, 「WORK·8」, 「손의 환상(幻想)」등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이제까지의 물결을 타고 바람에 나부끼는 이중(二重)사(寫)의 덩어리였다면, 여기서는 덩어리는 그 자체의 생태의 기원을 강하게 암시하는 돌들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손의 幻想」은 그 가락이 다섯 개로 되어있어서 인간의 「손」을 연상하게된다는 경우보다 바로 그 손의『의식』이 생태의 발생을 환기한다는 데서의 환생에 가깝다.
          마치 물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곤포과의 해초 같은걸 연상하게 되며, 이 경우 앞에서의 「해율」의 이중 사와는 근원적으로 다른 물질 그 자체의 연상을 환기한다 하겠다. 이것을 대담하게 비유하면, 「海律」의 그것은 인간의 대뇌생리학의 문제라면 「손의 환상」은 육체구조의 문제라고 분별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손의 意識
       
    •  우리들이 알고있는 스토운 헨지나 고인돌은 조각의 기원은 아니다. 이제까지 인간이 역사적으로 발견한 인간적인 흔적으로서의 조각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인지는 몰라도 바로 그 기원을 알려주는 증거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도 그렇다. 인간의 흔적으로서의 미술형식 가운데서 그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뜻 이상의 기원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바꿔 말해서 그것보다 더 오래된 역사적 유물로서의 미술을 인간은 아직 발견 못했다는 뜻이다. 이렇듯 미술의 역사는 발견의 역사이며 선택하고 평가하는 이성적 부여의 체계 속에의 역사랄 수도 있다.
       이 지구가 형성되던 발생의 단계에 대서양 속으로 매몰된 구대륙의 어떤 지 층 속에 또 다른 형식으로서의 미술이 있는지도 모르며 혹은 북극이나 남극의 수하 속 깊고 깊은 속에 우리들이 모르는 미술사가 잠들고있는지도 모른다.
      또 혹은 이러한 미술사를 분별하고 어떤 중요한 부분이 바로 그 의식의 깊고 깊은 심층 속에 잠재하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객관적 물체처럼 드러나는 게 아니며 늘 진리의 그늘 속에 숨겨져 있다는 말은 이러한 뜻으로서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관은 역사 그것보다도 그것을 의식하는 우리들 자술과 의식이라는 이원론적인 데로 좁혀지기 마련이다. 바꿔 말해서 미술과 의식은 어떠한 맥락으로 서로 관련지어져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게된다는 것이며, 우리들의 의식 속에 살고있는「미술」과 우리들의 의식밖에 존재하는 이것저것인 알타미라의 동굴벽화라든가 석굴암의 불상 같은 물질과의 관련은 어떻게 발생했으며 어떤 맥락으로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어째서 그것이「미술」인가 하는 게 문제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미술」을 의식하는 경우 대부분 그것을 눈으로 느끼며 따라서 시각의 대상으로서의 물질의 인간화를 흔히 「미술」이라고 통념 한다. 이럴 경우 인간의 눈이란 미의식의 전능 적인 기능으로까지 과장되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있다. 그런데 가령 아름다운 여체를 보는 남성의 경우, 눈으로만 그것을 보지 않고 그것을 전신으로 껴안아보고 싶다든지 하는 촉각으로 느낄 수도 있다.
       눈으로만 여체를 의식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그것을 의식한다는 뜻이며, 이때 인간의 의식구조는 인간신체의 어떤 특정부위만이 전담하는 게 아니라 전신이 바로 의식일는지도 모른다는 걸 자생하게된다.
       다만 이러한 자생이 인간의 오랜 진화과정에서 각기 전문적인 부위로 분화되어 우리들의 망각 속에 잠들게되었다는 지도 모르리라는 회의가 전기의 자생력을 촉발시킨다고 하겠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의 손에 대해서 주의 깊은 관찰을 기울인바 있으며, 인간의 손이야말로 세계를 의식하기 시작한 최초의 의식구조라고까지 말했던 것이었다.

‌강태성 ( 姜泰成 ) 
 
출생  |  1927-06-17, 충청남도 공주 

‌■학력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육학  석사 
1949 ~ 1954서울대학교  조소  학사 
 
‌■소속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경력 
‌현대미술 초대작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현직) 
1957  ‌서울공업고등학교 교사   
1958‌ 1968.00용산고등학교 교사   
1961‌ 1968.00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5회 특선 추천작가   
1968‌ ‌ 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전임강사   
1969‌- 1973.00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   
1970‌ ~ 1973.00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 조교수   
1971‌ ~ 1975.00미술협회 조각분과 위원장   
1973‌ ~ 1985.00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 부교수   
1974‌ ~ 1981.00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 및 심사.운영위원   
1975  문화공보부 위촉 야외조각설치위원   
1978‌ ‌ 제1회 중앙미술대전 초대작가   
1978‌ ~ 1979.00중앙미술대전 초대작가   
1983‌ ~ 1985.00서울조각회 회장   
1985‌ ~ 1992.08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   
1986‌  ‌서울신문사 전국조각공모대전 심사위원   
1986‌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1986‌  ‌0국립현대미술관 건립추진위원   
1986‌ ‌전국조각공모대전 심사위원   
1986‌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1987‌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1987‌ ‌서울올림픽조직위원 국제미술제 국내운영위원   
1987‌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1988‌ ‌서울조각회 회장   
198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동문회 부회장   
1988‌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운영위원   
1988‌ ‌중앙미술대전 운영위원   
‌1990‌ ‌0EXPO조직위 `93 상징탑 공모작품 선정위원   
 
‌■전시 
개인전 
 
1992 ‌제8회 초대개인전, 부산 동백미술관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우수구청선정기념작품   
1983 ‌제6회 개인전, 선화랑   
1981 ‌제5회 개인전, 미술회관   
1980  ‌미국 L.A. SHINNO GALLERY초대 조각개인전, 미국LA
초대개인전, 로스앤젤레스 Shinno Gallery   
1979 ‌제3회 개인전,  공간미술관 
1970 ‌제1회 개인전,  예총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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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1997 대한민국문화훈장옥관, 총무처 
1992 ‌국민훈장석류장, 총무처 
1988 ‌제2회 김세중조각상, 김세중기념사업회 
1998 ‌제32회 서울시문화상, 서울특별시 
1967 1968제16, 17회 국전특선, 경복궁미술관 
1966 ‌제15회 국전대통령상, 총무처 
 
기타작품 
공공미술설치 
1991< 아산중앙병원 준공 사옥 작품 >   
1988< 서울올림픽 국제야외조각전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