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Yoo, Young-Kuk

 

한국 근현대기의 추상화가

유영국은 한국 근현대기의 추상화가로, 일본 문화학원에서 그림을 배웠고 귀국한 뒤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등 한국의 미술단체를 이끌었다. 유영국의 작품은 산, 바다 등의 자연을 선과 면 중심의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형상화한 추상회화 작업을 특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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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출생지 경상북도 울진 
 1916년 4월 7일 - 2002년 11월 11일 
 
생애 
유영국(劉永國)은 1916년 강원도(현재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4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울진공립보통학교를 거쳐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로 진학, 이곳에서 미술교사 사토 쿠니오(佐藤九二男)를 만났고, 쿠니오를 통해 미술을 접하게 된다. 그는 학교에서 친일 행위에 불복하여 중퇴한 후에 쿠니오의 조언으로 도쿄 문화학원(文化學院) 유화과에 지원, 입학했고 1938년 문화학원 미술과를 제11회로 졸업했다. 1940년에는 오리엔탈사진 실기강습회와 오리엔탈사진학교 과정을 통해 사진을 배웠다. 1943년 중반까지 일본에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태평양전쟁의 징후로 인해 1943년 8월경 귀국한 뒤, 부친이 운영하던 고기잡이배를 탔다. 그는 1944년에 김기순과 결혼했다. 
 
유영국은 김환기(金煥基)의 제안으로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부 교수로 부임해 서울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50년 사퇴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울진으로 피난하여 양조장을 운영하였다. 그는 1954년에 환도하여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하였으나 6월경 홍수로 일본에서 제작한 100여점이 넘는 작품이 유실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1955년 양조장일을 완전히 접고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재개하였다. 그는 미술대학 교수활동도 재개했다. 
 
1957년에 홍익대학교 전임강사에 취임하였다가 1958년에 퇴임하였으나, 1966년에 홍익대학교 정교수로 부임하고 서양화과장을 맡았다. 그러나 1970년에 근무일 수가 주 3일에서 6일로 늘어나자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사임했다. 이후 전업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유영국은 1977년 심근경색이 발병하였고 치료 후 다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작품 활동 
유영국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은 도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문화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1937년 제7회 ‘독립미술협회전’에 유화 ‘랩소디’를 출품해 데뷔했으며, 같은 해에 제1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입선했고 이듬해 제2회전에서 협회최고상을 받아 회우(會友)로 추대되었다. 이후 유영국은 자유미술가협회와 N.B.G.(Neo Beaux-Arts Group) 양화동인 그룹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무라이 마사나리(村井正誠) 등 일본 추상미술가들과 교류했다. 이 시기에는 ‘work(1938/2002년 재제작)’와 같은 릴리프(부조) 작업과 1942년 경주 답사 중의 불상 및 고건축 사진 작업 등 회화 이외의 매체를 탐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40년 ‘미술창작가협회 경성전’을 통해 유영국의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1943년 여름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 유영국은 1948년 김환기, 이규상(李揆祥)과 함께 한국 최초의 조형이념에 기초한 그룹으로 여겨지는 신사실파(新寫實派)를 결성하여 ‘신사실파 창립전’을 통해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국전(國展)’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50년미술협회’도 결성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창립전이 무산되었다. 피난 중에는 부산에서 ‘현대미술작가 초대전’과 제3회 ‘신사실파 부산전’에 출품했다. 
 
휴전 후 유영국은 박고석(朴古石), 이규상, 한묵(韓默), 황염수(黃廉秀) 등과 1956년에 창립한 ‘모던아트협회’와 조선일보 주최의 ‘현대작가초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후 ‘2‧9 동인회’와 ‘신상회(新象會)’를 결성하고 1963년 제7회 ‘상파울로비엔날레’에도 출품하는 등 그룹활동을 주로 하였다, 유영국은 1964년 일체의 그룹 활동 중단을 선언한 뒤 같은 해에 신문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개인 작업에 몰두했다. 
 
유영국의 작품세계는 산, 바다, 노을 등의 일상 속 자연의 형태를 선, 면 등으로 단순화시켜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추상화 작업을 특징으로 한다. 형태는 ‘산(1957)’, ‘work(1964)’와 같은 비정형에서 ‘work(1970)’처럼 점차 엄격한 구성의 기하학적 조형을 사용하는 양상을 보였다. 색은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을 기반으로 초록, 보라 등을 통해 변화를 주었으며 같은 계열도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조화를 이루었다. 전반적으로 표면의 질감은 살렸다. 이 같은 유영국의 추상화들은 자연의 정수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평가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다. 기본 조형요소와 강렬한 색채를 절묘하게 사용하여 자연의 추상상태를 형상화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 현대의 전위적인 미술운동 그룹들에 리더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60세까지 다양한 조형실험을 하기도 했으나,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한국 미술계의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선과 면과 색을 중심으로 자연이라는 대상을 환원시키려는 작품세계를 고수하여 1960, 70년대에도 기하학적 추상의 경향을 유지한 것은 외골수적 면모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참고문헌 
• 유영국, 『Yoo Young Kuk』, 마로니에북스, 2012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 이일,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한 전형: 유영국」, 정연심, 김정은, 이유진 편,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 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