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의 목소리를 기록(記錄) - 장리석
장리석씨의 작가로서의 명성은 제4회 국전(國展)의 < 조롱과 노인 >으로부터이며, 작가로서의 확고한 위치에 이른 것은 제9회 국전의 < 그늘의 노인 >부터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선전(鮮展)을 통해 데뷔했지만 작가로서의 명성은 때늦은 느낌이 없지 않다. 그만큼씨(氏)는 혜성처럼 반짝 불꽃을 튀기다 사라지는 천재형의 작가이기보다는 오랜 세월을거쳐 쌓아올려 가는 만성형(晩成型)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예리한 칼날의 비정한감각에서 오는 이지적인 타이프이기보다는 끝이 닳은 구수함과 뭉클한 정감을 쏟아 놓는 타이프의 작가이다.
고향인 평양을 북에 두고 온, 인간으로서 또는 예술가로서 겪어야 했던 시대적 고뇌가씨(氏)의 작품의 배면(背面)을 이루어 주고 있다는 점. 씨(氏)는 누구보다도 건실(健實)하게 오늘을 살아온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화려하면서 위선에 가득찬 앞면이 아니라 언제나 어두우면서도 진실에 찬 뒷면, 서민생활의 애환(哀歡)을 쫓는시점(視點)은 한 사람의 시대적 증인으로서 작가적 위치를 획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한 시대를 살고 난 무기력한 노인들의 표정에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연민이따사로운 햇살처럼 살아나고 있으며, 생선 비늘처럼 번쩍이는 생활의 아우성이 범벅이된 어시장(魚市場)이나 해변의 여인군상 속에서 그는 삶의 강인한 의지와 적나라한 인간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 지치지 않는다. 씨(氏)는 대상을, 윤리를 앞세우는 이지적(理智的)인 파악에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충격에서 접근해 들고 있기 때문에 구원이나 색채에 있어서 극적(劇的)인 대비를 보여줄 때가 많다. 뭉텅뭉텅하게 점착(粘着)되는 마티에에르는 이 같은 방법에서 연유하는 표현기법이다. 따라서 형태는 윤곽선을 통해 그려지지 않고 색채의 마스에 의해 커다란 포름으로 요약되어진다.
50년대에 가장 빈번히 다루어진 테마인 노인과, 노인과 연결되는 주막(酒幕)풍경?노변(路邊)풍경 등은 대개 갈색과 녹색이 주조(主調)가 되어 화이트의 역조(逆照)를 통해 대비적인 요소를 짙게 보여 준다.60년대에 들어와서 관심을 쏟기 시작한 일련의 시정생태(市井生態)는 주로 제주도 피난생활을 통해 인상된 연루(連累)의 테마로, 부산?제주도?남해안의 해변이 무대(舞臺)가된다. 노인의 정태적(靜態的)인 구도와 운명적인 마티에에르에 비해 시정생태(市井生態)를 중심으로 다룬 해변의 소재에서는 보다 격정적(激情的)이면서 감동적인 유열(愉悅)이 비비드한 터치와 동적인 구도에 의해 짙게 배어 나오고 있다. 이 무렵부터 갈색조와 더불어 녹색과 황색의 주조(主調)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최근에 와서는 시점은 더욱 예각화(銳角化)되고 분석적인 형태해석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색채는 대비에서가 아니라 하모니로서 형태의 내부로부터 분출되고 있다. 그것은 감동적으로 어프로치하는대상과의 관계가 관조적인 태도로 변이(變移)되어 가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완숙(完熟)의 경지에 이르는 전주곡(前奏曲)인지도 모른다.
출처 :오광수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