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흙에서 솟구치는 힘의 긴장과 역동성
호병탁(시인·문학평론가)
1. ‘본다는 것’은 하나의 ‘시각적 판단’이다. 그런데 이런 판단은 본다는 것이 행해진 이후에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지적 작용이 아니다. ‘퇴적층에 박혀있는 돌무더기’ 같기도 하고 ‘오래된 소나무 껍데기’ 같기도 하고 ‘굴 껍질더미’ 같기도 한 조도중의 작품을 인지한다는 것은 ‘본다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단박에 느끼게 되는 직접적 판단요소가 되는 것이다. 또한 ‘본다는 것’이란 정신적 능력은 추상적 개념에 의해서도, 인식되는 정서에 의해서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시각적 판단을 ‘유도하는 도구’가 아니라 ‘결과적 귀결’일 뿐이다. 기울어진 각도의 돌무더기를 볼 때 어떤 사람은 쾌적함을, 어떤 사람은 불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심적 정서는 그 돌들의 위치와 각도를 감지하는 순간 발생하는 결과일 뿐이다. 물론 나는 이런 순간의 인지적 판단에 대해 논리적 설명을 가해야 함으로 이 글에서 말이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또한 우선 전체의 장소에 그 ‘물체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이다. 물체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밝은 것도 있고 어두운 것도 있다. 유일하고 고립적으로 지각되는 물체는 없다. 본다는 것은 사각의 캔버스라는 공간상에서 서로 다른 크기와 색과 밝기를 가진 물체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조도중의 돌무더기는 단순히 어떤 장소를 차지하고 있은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장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고 중심으로 이끌리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공간의 한 자리에 묶여 실제적 ‘운동’이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주변과 관계하며 척력과 인력의 내적 ‘긴장’, 즉 움직임의 역동성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긴장 역시 지적 작용이 부여하는 이차적 산물이 아니라 크기, 위치, 밝기 등과 같은 지각 자체의 한 부분이며 그 내용이 된다. 그럼에도 끌어당기는, 혹은 밀어내는 ‘힘’에 의해 발생하는 긴장을 지각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밧줄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밧줄 위에 꿈틀대는 ‘힘의 긴장’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나는 이글 전반에 걸쳐 조도중의 작품에 나타나는 그런 힘의 긴장과 그에 따른 운동을 주시하고자 한다. 물론 공간 안에서의 형상, 크기, 방향, 빛과 색채 등이 언급되겠지만 이는 결국 그림의 생명인 긴장과 운동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다는 것은 ‘움직이게 하는 힘’을 느낀다는 것과 진배없다.
2 2000년 1월, 새 천년 벽두에 조도중은 찻길도 없는 산골 외딴집에 처박힌다. 그곳에서 나무와 풀과 꽃들, 그리고 그것들을 보듬어 안은 흙과 함께 원시인처럼 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의 그림은 큰 전환점을 보이게 된다. 쌀 한 말이면 한 달 먹고 사는 그의 주위에는 스스로 충만한 대자연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흙을 캐서 물감 대신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들을 화폭에 담았다. 조도중이 ‘흙의 화가’라고 불리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는 원래 구상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60-70년대 국전을 포함한 수많은 구상전에서 입상하였고 75-85년에는 ‘구상전’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80년대 내내 대학에서 강의하였다. 그의 이력을 보면 89년까지의 겸임교수 생활로 일단 마감이 된다. 그리고 2000년, 고창 산골에서 흙을 소재로 다시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 90년대의 10년간은 완전한 공백이다. 전시회 한 번 없다.
그는 2003년 롯데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자신이 사는 산골에서 퍼 올린 흙으로 그린 그림들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조도중 땅꽃전’이라 명명된 이 작품전은 그의 예술세계에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포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나는 이때부터의 조도중 예술작업을 ‘흙그림 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개인전에 등장한 작품군은 “검은 흙에서 핀 꽃이 검은 꽃이 아닌 것”처럼 “그 오묘한 자연의 경이를 통해 흙의 색깔이 아니라 색깔 속에 용해된 흙의 내재미를 찾아냈다”는 상찬을 받았다. 40여년의 ‘유화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흙그림 시대’가 성공적으로 그 막을 연 것이다.
2012년 서울 인사아트에서 ‘땅의 생명전’이 열렸다. ‘땅꽃전’ 이후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산 속에 처박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화폭에 담긴 빛깔은 더욱 다양해졌다. 흙에 내재한 석영, 운모, 장석, 방해석 등은 철분과 함께 산화하며 화가에게 다채로운 색상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7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갖가지 흙의 조합을 통해 이제 색은 320가지로 늘어났다. 화가이기 전에 그는 농사꾼처럼 계속 흙을 주물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림에 담긴 그의 사유와 관념도 그 깊이를 더해갔다.
다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그는 14년 만에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흙을 짓이기고 섞는 작업은 여전하다. 지금은 햇빛과 달빛, 비와 안개, 나무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숲의 요정까지 그의 작업을 거드는 모양이다. 색조는 더욱 미묘해지고 신비감이 돌고 있다.
창작행위가 작가의 내적 심층에 위치한 정신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려할 때, 작품해석을 위해 작가의 표면적 개인사에 지나치게 의존함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작품과 개인사의 상호조명은 우선 표면에 나타나는 작품의 일차적 이해 뿐 아니라 숨어있는 의미의 계시를 발견하는 데도 크게 유익하다는 것을 많은 문학작품을 평하며 체득한 바 있다.
특히 시인의 숙명과도 같은 신산한 개인사는 그의 많은 작품들의 해석에 의미 있는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내가 화가의 이력을 들먹거린 것도 바로 개인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그의 작품이 변모하고 있는지 그 시간적 지침을 설정하고 작품해석과 함께 그 변화의 과정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이다.
90년대는 화가에게 생애 최대의 암흑기였던 것 같다. 앞서 언급한대로 결국 그는 산골에 들어가 원시생활을 하게 되고 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3년, 서울 롯데화랑에서 ‘땅꽃전’을 연다. 편의상 여기까지를 ‘1기’로 호명한다. 그는 계속하여 산 속에서 흙 그림을 그리며 흙 파먹고 살아간다. 그렇다가 2012년 서울 인사아트에서 ‘땅의 생명전’을 연다. 이 기간을 ‘2기’로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2018년 오늘 현재다. 물론 그동안 그는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다. 언제 어디서 다시 전시회가 열릴지는 나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땅의 생명전’ 이후 현재까지를 ‘3기’로 부르기로 하자.
3. 세상이 새 밀레니엄의 찬가로 요란하던 2000년, 화가는 역으로 대자연만이 숨 쉬는 ‘침묵의 세계’에 들어서있었다. 서리 내린 어느 날 화가는 멀지않은 곳에 핀 한 송이 붉은 꽃을 본다. 다가서서 보니 그것은 꽃이 하니라 한 덩어리 붉은 ‘황토’였다. 화가는 그때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고 정신없이 그 흙덩이를 쥐고 뛰어내려와 자신이 그린 유화의 붉은 색과 비교해 보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색은 비슷했지만 육박해오는 감정이 달랐다. 즉시 아교를 사다가 색칠해보니 되겠다 싶어 소품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닷새 뒤 맞대보니 그가 40년간 그려왔던 유화작품은 비교대상도 되지 않았다. 그는 결단한다. “됐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유화 그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조도중의 ‘흙그림 시대’의 ‘1기’가 시작된다.
‘황토(黃土)’의 사전적 정의는 ‘누르고 거무스름한 흙’이다. 나는 이 정의에 전혀 만족할 수 없다. 누르고 거무스름한 흙이 어디 하나 둘인가. 내 경험상으로 황토는 오히려 적황색으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황토집의 벽들은 하나같이 누른빛이 도는 붉은색이다. 특히 화가가 작업하던 곳은 그 특유의 붉은 빛 황토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역이 아닌가.
화가는 바로 그 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작품들을 보면 단연 황색과 적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7가지의 색을 추출해 냈다지만 시작 단계에서는 아무래도 자연 그대로의 황토색이 우선 화폭 위에 올려 졌을 것이다. 한 예로 「봄빛」(2000)을 보면 그야말로 황토벽 위에 부서지는 봄 햇살을 보는 것 같다. 외에도 「마음의 방」(2000), 「달빛」(2000), 「산빛」(2001), 「돌아온 탕자」(2001), 「둥지」(2002) 등과 같은 작품들이 밝고 따뜻한 황색과 적색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산국(2003) 연작도 꽃의 색깔은 노랑이나 흰색이다. 심지어 「소녀상」(2003)의 소녀도 ‘노랑’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있다. 조도중의 ‘흙그림 시대 1기’를 ‘황적색의 시대’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 기간의 여러 작품 중 「소리의 변주」를 주목하기로 하자.
한마디로 이 그림은 가로 세로의 선들과 그로 인해 창출되는 면의 분할로 화면이 구성되고 있는 ‘기하학적인 추상’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선과 면의 평면구성은 적절한 비례와 균형 그리고 그물망 같은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이지적인 추상’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기하학적 구성은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식으로 차고 엄격하지는 않다. 선들은 수직수평의 직선이 아니라 부드럽고 완만하게 휘어지고 있다. 또한 그 색도 진해지는가 하면 엷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선이 교차하며 만드는 사각형의 형태도 직각의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변형의 모양들이 되고 있다. 사각 안에는 조그만 원들이 들어차있다. 원들도 그 크기가 서로 다르고 테두리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다. 같은 기하학적 추상인 「달빛」이 직선과 직각으로 엄정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이 그림에는 모든 구성요소들이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서 부드러운 율동을 창출하고 있다.
색채는 강한 표현성을 갖는다. 색채는 어떤 특별한 분위기를 표출하는 것은 물론 문화권에 따라 채택되는 보편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색의 표현성은 우리의 연상에도 근거하지만 그 명도, 채도, 파장에 따라 생리학·심리학적으로도 관계를 갖는다. 적색처럼 파장이 긴 색은 밖으로 팽창되어 관찰자에게 근접해 보이는 반면 청색은 안으로 수축하여 멀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청, 녹, 황, 황적, 적의 순으로 근육의 힘과 혈액순환이 증진된다고 알려져 있다. 적색 계열은 따뜻한 느낌을 주고 청색 계열은 찬 느낌을 준다는 것도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 그림의 주조색은 단연 황적이다. 작은 원들은 대개가 바탕색보다 짙은 적색이거나 엷은 황색으로 같은 계조다. 백색과 회색의 원이 나름대로의 표현적 특징을 보이며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주조의 색을 덮을 수는 없다. 흑색 선의 그물은 밖으로 팽창하는 황적의 바탕색을 힘겹게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색채구성은 ‘긴장효과’를 산출해 낸다.
결정적인 역동성은 유발은 그림 좌측에서 이 그물이 터져버린다는 데 있다. 우측에서부터 그물의 밀도가 흩어지지 시작하더니 마침내 커다란 구멍으로 뚫려버리고 만다. 원들과 바탕색이 구멍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강한 힘의 분출과 그에 따른 운동감 또한 솟구친다. 이런 역동성의 긴장은 이후 조도중의 그림세계를 예고하는 하나의 단편처럼 보인다.
대자연의 빛 에너지가 넘치는 황적색을 기조로 한 ‘흙 그림 시대 1기’의 그림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황토’가 그 원료가 되었다. 작품들은 황토처럼 따뜻하고, 밝고, 활력이 있다. 이는 ‘생명력’이 넘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우선적인 것은 생명의 보존, 즉 삶에의 의지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모든 재능은 이 절박한 욕구에 봉사했고, 미술 역시 음악, 무용, 시 등과 함께 원시의 의식(儀式) -후세의 종교- 으로 표출된 이 생명의지에 대한 복합적 반응의 하나였다. 조도중의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 그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그가 산 속에 들어간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그는 황토를 보았고 그것은 화가에게 새로운 예술의 생명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그는 원시로 돌아갔던 것인가. 인류가 최초로 활용한 물감이 황토였다. 황적의 황토가루로 동굴 벽화를 그리고 몸을 단장하기도 했다. 매장 시에는 무덤의 장식용으로도 썼다. 흙을 그림그리기에 사용했던 것은 인류가 추상적·상징적 사고를 발달시킨 최초의 증거물로 여겨지고 있다. 화가는 바로 고대인이 그랬던 것처럼 흙을 주물렀다. 흙은 그에게 생명이나 진배없었다. 실상 흙 1그램에는 일억이 넘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하니 흙덩어리는 바로 ‘생명의 덩어리’다. 그곳에서 화가는 그 생명의 덩어리를 만났고 그는 그것으로 순수한 ‘원시적 신앙의 열정’으로 그림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 창작된 그의 작품들은 한마디로 직관적 박진감과 함께 넘치는 생명력을 현시하고 있다.
4. 화가는 계속하여 산 속에서 산사람으로 산다. 7가지의 흙물감은 그동안 갖가지 조합을 통해 320가지로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흙 그림 2기’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완연한 주조색의 변화다. 황·적 일변도였던 작품에 청색과 녹색이 과감하게 투입되고 있다. 이런 경향이 잘 나타나는 작품 중의 하나가 「축제」(2007)다. 어느 시인은 이 작품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노래한다. “당신은 축제 한마당에 초대되었습니다. 꽉 차 넘치는 음악과 기억의 미로에서 뛰노는 사슴과 호수가, 연꽃 진 자리에 들어와 계십니다. 천천히 하늘과 땅과 물을 즐기시며 돌아나가십시오.”
그림에서는 당장 ‘숲속의 왈츠’ 선율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다. 하늘도 푸르고 하늘 담은 호수도 푸르다. 그림에는 연청색 위에 진청색이 바람에 일렁이는 잔물결처럼 뿌려져 있다. 녹색의 잎 사이로 연(蓮)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주위의 숲에는 시인이 노래하는 사슴은 물론 갖가지 작은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다. 그야말로 한바탕 대자연의 축제가 벌어진 것 같다. 하늘과 숲과 호수가 있으려면 청·록이 투입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림의 주조색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조도중 작품의 색채변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일련의 작품들이 있다. 「나무 이야기」(2007)에는 푸른 하늘 아래 나부끼는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여기저기 꽃들도 피어있다. 청·록이 대거 사용되고 있는 숲의 정경이다. 「나무 이야기 3」(2007)에서는 아예 그림의 주조색이 하늘과 숲의 나무를 바탕으로 완전히 청색으로 바뀌고 있다. ‘흙 그림 1기’에는 눈에 띠지도 않던 청색 군이 이제 화폭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청록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점이다. 「나무 이야기 4」(2011)에 와서는 다시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청색은 전체적으로 청회색으로 바뀐다. 나무줄기에도 회색이 투입된다. 엷게 깔린 황토색도 은은하게 회색 바탕의 뒷전을 맴돌 뿐 전혀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활력으로 출렁대던 화폭은 고요해지고 대신 숲의 정적 속에 깊은 사유가 펼쳐진다. 훗날 ‘3기’ 작품세계의 변화를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 기간 중의 대표작이라고 생각되는 「포도원의 아침 2」(2008)에 시선을 집중해본다. 한 평론가는 “아침 일찍 나가본 포도원에서 만난 이슬방울, 산꽃, 산열매와 솔방울 등을 그대로 주워 올려 상을 차려 놓았다”며 특히 이슬방울을 머금고 있는 산딸기는 “그 아침 작가를 만나기 위해 밤을 보내면서 맛과 색깔을 준비했을 것이다.”라고 서정적 문체로 이 그림에 대해 평을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림의 전체적 포치(布置)를 적확하게 지적하는 한편 무정물인 딸기의 내면 의식까지 포착하고 있는 말이다.
의식 행위는 수동적이거나 비자발적 인식이 아니다. 작가가 숲 속에서 산딸기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내재된 본능에 의해 선택되어 관심의 초점이 맞춰진 특별한 대상이 된다. 이처럼 특정대상을 특별히 주목할 때는 일상적 감각에 의한 ‘보기seeing’가 아니라 ‘바라보기look’가 된다. 즉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눈여겨보는 것이다. 이때 과거의 잡다한 지식과 경험은 별 의미가 없다. 밤새 아름다운 맛과 색깔을 준비하고 아침 산책길의 화가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산딸기는 화가의 눈에 ‘신의 선물’에 다름 아니다. 화가는 「작업노트」에서 말한다. “성서에 나오는 ‘육신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기억한 탓인지 내 자신은 정말 하잘 것 없는 흙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흙을 물에 이겨 캔버스에 칠하는 자신”이 “더욱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신에 감사하며 구도자적 열정으로 붓을 휘두른다. 그리고 마침내 신의 선물은 화폭에 그대로 옮겨져 아침 이슬에 반짝이며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조도중은 독실한 신앙인이다.
그림 전시회에서 문득 이 작품 앞에 서게 되었다고 하자. 우리는 이 작품에 어떤 편견도 없다. 특별한 기대 또한 없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선채 한 1분쯤 숨을 죽이고 그림을 지켜보다가 다시 가던 길을 갈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순간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 우연한 즐거움의 충격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림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미 이 글의 초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그림 앞에 붙박여 멈춰 서는 것은 어떤 분석의 과정을 걸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본다는 것’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첫눈에 그림은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었고 그 그림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발걸음은 멈춰 섰을 것이다.
예술작품이 마음을 ‘움직인다’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되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이다. 관람자의 정신적 무의식 반사에 뒤이어 일어나는 즉각적인 정서다. 만약 이 정서가 확실한 관념을 형성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정서가 아니다. 나는 이처럼 ‘마음의 움직임’을 단박에 느끼게 하는 직접적 판단의 작용을 ‘감정이입empathy’으로 본다. 감정이입은 보는 사람이 비자의적으로 자신을 외부 대상에 투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다른 생물이 될 수도, 무생물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보는 사람은 대상과 ‘동일화’되어 그 속성 그대로의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새와 함께 하늘을 날고, 바람 맞고 있는 나무와 함께 우리 몸도 휘어지고, 작고 귀여운 붉은 산딸기와 함께 아침이슬에 반짝이게 된다. 한마디로 대상 속에 들어가서 함께 느끼는 것이다.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감정이입을 통해 마음의 움직임을 유발하는 작품의 주된 요인은 무엇인가. 작품은 회백색을 주조로 한 바탕색에 엷은 황토색과 갈색이 혼융되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배면의 색들이 만드는 선과 면의 화면 분할, 색채의 상호 조화는 그림에 안정감과 균형감을 견인한다. 녹색의 이파리들이 그림에 악센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 중앙의 산딸기 몇은 주위의 어떤 것들보다도 그 채도, 즉 붉은 빛깔의 선명도가 높다. 그 중에서도 정중앙에 위치한 딸기 하나는 특별히 그 선명도가 눈에 띤다. 이 딸기에는 다섯 개의 새하얀 점이 찍혀있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이 열매를 밝게 하는 효과를 주는 동시에 다른 열매들도 동격의 것으로 보이게 한다. 딸기의 빨간색과 상대적으로 채도가 떨어지는 배면의 다른 색들 사이에는 동적 긴장이 발생한다. 중앙의 선명한 적색은 주위의 힘을 강한 인력으로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움직임’의 역동성이 생기고 이 역동성이 또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5. 나는 조도중의 ‘흙 그림 1기’를 ‘황적색의 시대’, ‘2기’를 ‘청록색의 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작품들은 생명력이 꿈틀대고 활력이 넘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현재진행형인 ‘3기’에 와서는 강렬한 채도로 충일하던 화폭은 상대적으로 고요해지고 대신 숲의 정적 속에 깊은 사유가 펼쳐지고 있다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이 글 서두에서 말한 ‘퇴적층에 박혀있는 돌무더기’ 같기도 하고 ‘오래된 소나무 껍데기’ 같기도 하고 ‘굴 껍질더미’ 같기도 한 조도중만의 개성 있고 독특한 형상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형상들은 여전히 힘의 긴장을 발하고 있지만 색채들은 전체적으로 차분해졌다. 회색 군이 대거 작품에 투입되고 그의 신앙과도 같은 황토색도 톤 다운되어 훨씬 은은해졌다. 세 개의 그림을 보며 논의를 계속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