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색채: 라디오스타

‌글: 김순옥 (예술학 박사, 한국미술진흥원 원장)

‌‌줄거리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비와 당신’ 으로 일약 88년 최고의 가수왕에 오른 락커 최곤(박중훈). 대마초와 폭행사건 등으로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이 최고라는 착각 속에 빠져사는 철없는 락커 최곤의 옆에는 20년간 온갖 뒤치닥꺼리를 다해온 의리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강원도 영월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를 맡기로 한다. 그들은 원주방송국에서 좌천된 강석영 PD와 함께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최곤에게는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눈에 차지 않는다.
반말 진행과 선곡 무시는 물론이고 방송 부스 안으로 커피 배달을 시키는 등 안하무인격의 방송진행으로 일관하는 최곤. 하지만 묘하게도 최곤의 격식을 따지지 않는 방송진행은 영월군민들의 마음을 파고들게 된다. 커피 배달 나온 김양의 즉석 출연 방송이 청취자의 심금을 울리게 되고, 최곤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영월 유일의 락밴드 ‘이스트리버’의 열정과 음악, 주민들의 따뜻한 사연이 격식 없는 진행을 통해 소개되면서 최곤의 방송은 영월을 넘어 서울에서도 크게 인정받는다.
이때 서울의 연예기획사에서는 박민수에게 매니저 교체를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한다. 박민수는 고민 끝에 최곤의 앞길을 막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인다. 박민수를 떠나보낸 후 섭섭함과 허탈함에 시달리던 최곤은 마이크를 통해 20년 매니저 박민수에게 감춰두었던 속마음을 표현한다.
“형, 듣고 있어? 형이 그랬지? 저 혼자 빛나는 별이 없다며. 와서 좀 비쳐 주라.쫌.”
버스 안에서 박민수와 함께 이 방송을 듣던 최곤 팬클럽 회장 출신인 아내 순영은 체념한 듯 돌아가라고 말하고, 어느 비 오는 날 박민수는 영월 방송국 앞에서 최곤에게 우산을 받쳐주며 그들이 결코 떨질 수 없는 인생의 파트너임을 증명한다.


최 곤의 색채
철없는 락가수로 나오는 최곤(박중훈)의 검정색 가죽잠바는 그 질감처럼 차가우면서 고집스럽고 거칠어 보인다.
과거의 찬란한 톱스타 시절을 회상하며 왕자 병에 빠져있는 그가 우울한 표정으로 반항적 기질을 보이는 모습을 검정색 가죽잠바로 잘 매치시켰다.
과거 스타로서의 자부심을 권위를 상징하는 검정으로 대변하였다.
이미 중년이 된 옛날 펜들에게 젊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의상이다.
현실에 적응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는 최곤의 모습이 돈키호테처럼 우스꽝스럽지만, 가슴속에 뜨겁고 강한 기운이 내제되어 있음을 검정 가죽잠바 속의 빨간 티셔츠를 통해 잘 나타내었다.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입은 빨간 잠바는 튀면서 밝게 느껴진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암울했던 상황이 걷히면서 라디오 스타로서 기쁘고 새로운 일들이 터져 나오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민수의 색채
속 깊은 매니저로 몰락한 가수를 끝까지 지키려는 박민수 매니저(안성기)를 회색과 검정의상으로 표현하였다.
무채색은 빛을 발하는 스타 뒤에 숨겨진 그림자 같은 존재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색이다.
이기적인 최곤의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마치 부모처럼 받아주는 그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색상으로 잘 나타내었다.
회색은 무기력해 보이지만 자신을 억제하고 주변과 잘 협상하면서 일을 원만히 해결하려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 장면에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막아주기 위해 박민수가 최곤에게 자주색 우산을 받쳐주는 장면은 오래토록 진한 감동을 준다.
이때 세찬 빗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강한 조명을 비추어 거리에 따라 우산의 색이 다르게 보인다.
가까이 보면 자주색이고 멀리서 보면 분홍색이다.
자주색은 진한 정을 상징하는 색이고 분홍색은 보호본능을 상징하는 색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처음에는 코믹하다가 마지막 장면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미대출신 감독답게 감각적인 색채로 장면마다 효과적인 장면을 연출 하였다.


강석영PD의 색채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강석영PD(최정윤)는 진한파랑과 하양으로 나타내었다.
여성으로서 부드럽고 예쁘게 보이기보다는 마치 박력 있는 남성과도 같은 언어와 행동을 보이지만 아름다운 미모로 여성의 쿨한 매력이 오히려 섹시하게 느껴진다.
생방송을 완벽하게 진행해야하는 PD의 책임감을 진한 파랑과 하양으로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진한파랑과 하양은 냉정한 듯 하면서도 성실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스트리버의 색채
자유 분망하고 젊음이 물씬 풍기는 이스트리버(노브레인)를 찢어진 청바지와 요란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노란 머리 염색으로 표현하였다.
신세대이지만 오히려 구세대의 대선배를 동경하는 락가수 지망생들의 시끌벅적한 모습이 이스트리버 의상 색채에도 잘 나타나있다.
친구들과 항상 몰려다니는 그들이기에 개성이 강한 의상디자인과 색채를 통일감 있게 하여 동질감을 주었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그들의 불량한 것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위험해보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장면에서 젊은이다운 패기가 느껴지면서 순수하고 천진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발랄한 캐릭터의 색상으로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