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색채: 올드보이

‌글: 김순옥 (예술학 박사, 한국미술진흥원 원장)

‌죄악과 분노의 검정
영화 ‘올드보이(Old Boy, 2003)’의 포스터는 검정이 주를 이룬다. 검정은 기독교 미술에서 사탄의 악마성과 그것에 대항하는 처절한 투쟁뿐만 아니라 슬픔을 표현하는 색이기도 하다. 검은 그림자는 미스테리를 강렬하게 암시한다. 어둠은 공포를 연상시키며 많은 상상력을 가져다준다. 검정에는 긴장감이 돈다. 검은 장갑과 검은 옷과 검은 그림자는 범죄영화나 서스펜스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Russell DePalma)가 감독한 ‘살인드레스(Dressed To Kill, 1980)’는 긴장감으로 숨 돌릴 새 없는 공포와 예상 외의 결말로 서스펜스 만점의 영화였다.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면도날 살인, 지하철 안에서의 귀신놀음, 샤워실까지 다가오는 살인마, 그 살인마는 항상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도 역시 검은 장갑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감독으로 유명하다. 초기의 그의 출세작 ‘해외 특파원(Foreign Correspondent, 1940)’에서 주인공이 스파이에 의해 제거될 뻔한 긴박한 순간마다 스파이의 검은 장갑이 클로즈업되어 관객을 긴장시킨다. 히치콕은 서스펜스를 암시하는 기호로서 검은 장갑을 훌륭하게 사용했다.
영화 ‘올드보이’ 스텝 계약서에는 특이한 문항이 하나 있다. 영화의 결말을 미리 발설 하면 위약금을 물 수 있다는 것. 그 만큼 영화의 반전은 충격이었고, 결말이 개봉 전에 알려지는 것은 영화의 극적 재미를 위해서라도 보안은 중요했다. 영화에서 어두운 밤, 죽음, 죄악, 불륜, 불량스러움 등을 포스터의 검정배경과 검정그림자로 표현함으로서 의도가 간파된다.


‌부도덕한 빨강
이 영화에서 빨강의 상징적인 의미는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상징하는 바도 달라진다. 초반부에서 사용된 빨강은 억압, 상처, 분노의 의미를 나타내고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복수심과 사랑을 상징한다. 감금방에 갇힌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분)의 죄수복이 처음에는 푸른색이었다가 빨강으로 바뀐 것도 분노를 상징하고, 감금방 복도의 바닥 색깔, 그 방에 걸려 있던 그림 제임스 앙소르(James Sydney Ensor)의 ‘슬픈 남자’와 오대수가 갇혀 있던 상자, 풀려난 후 그가 입었던 남방 색깔, 근친상간을 하던 모텔의 전체적인 색깔, 미도(강혜정 분)의 옷 등이 모두 빨강이다. 빨강은 악마와 지옥의 색이며 창녀를 상징하기도 한다. 중세의 빨강머리여자들은 마녀로 화형을 당할까봐 두려워했으며 털이 빨간 여우와 다람쥐도 악마의 짐승이라고 믿었다. ‘악마의 다람쥐’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하는데 옛날 영국에는 다람쥐가 매춘녀를 상징하였고 영국과 미국에서 유명한 부도덕의 상징은 ‘주홍글씨’이다. 근친상간인줄 모르고 저지른 오대수와 미도의 사랑은 빨강으로 표현되어 부도덕의 색으로 해석된다.


‌부정적인 초록
이 영화에서 초록의 상징적인 의미는 죽음, 고독, 타락이다. 이우진(유지태 분)의 누나 이수아(윤진서 분)를 삼킨 저수지의 초록물은 ‘죽음’을 상징한다. 항상 자신을 옆에서 지켜주던 유일한 사람인 한실장(김병옥 분)을 자신의 총으로 죽이는 장소인 펜트하우스의 초록색 조명은 이우진의 고독을 대변해준다. 이우진의 대화명도 ‘에버그린’이다. 올드보이에서의 초록은 도덕적 타락의 상징적인 개체이다. 오대수가 왜 갇혔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과거 자신의 악행들을 ‘초록색 노트’에 써내려 갔다. 평범한 그가 자신의 삶에서 악행이라고 여긴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것들인데도 악행들이 많았다고 자책을 한다. 이수아의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장소도 ‘상록고등학교’이다. 최면술사의 최면에 걸린 후의 장면에서 ‘근친상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몬스터’로 분리된 오대수의 얼굴은 초록으로 표현된다. 초록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위로, 치료, 평화, 시원함을 주지만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이기심, 질투, 공포, 죄악을 상징한다. 이 영화에서 초록은 부정적인 색으로 사용 되었다.


‌추함을 미화시킨 보라
이 영화에서 보라의 상징은 죽음, 집착, 근친상간을 미화시키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강물로 떨어지는 이수아의 옷은 보라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죽은 소녀가 가장 좋아 하는 색이라는 사실을 연상시킨다. 누나의 죽음을 잊지 않으려는 이우진은 편집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복수의 도구들을 모두 보라색 상자에 넣었다. 후반부에 앨범을 보며 ‘너의 개가 되겠다’며 개의 흉내를 내는 오대수를 보며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려 웃음을 참는 이우진의 손수건도 보라색이다. 보라는 신비스러움을 주며 명상적인 사고를 나타낸다. 또한 슬픔과 우울, 숭고함, 위엄을 준다.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몸이 괴로워 활동할 의욕을 잃게 되면 지신도 모르게 보라를 원하게 된다. 건강한 사람이 보면 보라는 병을 주는 색처럼 보이고 마음이 괴로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보라는 약이 되는 색이다. 이 영화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의 잔인한 장면들을 보라색으로 미화 시켰다.


‌죄를 덮어주는 하양
제작진은 격렬한 영화의 끝을 촬영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설원을 찾아 떠났다. 최소한의 인원과 최단기간의 작업 계획으로 떠난 뉴질랜드 촬영지는 현지 스텝들에겐 특별한 곳이었다. 제설기를 동원할 수 없었던 상황, 눈은 내리지 않고 쌓인 눈으로 고생스럽게 눈을 만들던 스텝들의 노고를 하늘이 알았는지 정말 기적처럼 눈이 내렸다. 이 영화에서 하양의 의미는 갱생과 부활이며, 희망인 동시에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다. 하양이 추구하는 순결과 완벽성은 부정을 저지른 사람에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색이다. 이우진의 잔인한 복수극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한 오대수를 하얀 눈과 대비시킴으로써 어두운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올드보이’에서 복수극이 끝난 후 딸과 재회하는 장면을 설원에서 하얀 눈과 함께 주인공이 딸과 포옹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같은 감독의 다른 작품이지만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도 마지막 장면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주인공 금자(이영애 분)가 눈이 오는 날 딸(권예영 분)과 함께 포옹을 하다 하얀 케이크에 얼굴을 묻으며 끝을 맺는 장면이다. 하양이 주는 속죄와 희망의 상징이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