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얼과 자화상을 가장 한국적으로 그리는 현대 화가 - 이만익
이만익은 한국적 정서라는 커다란 과제 아래 인위와 조작이 없는 청정을 그린 한국적 서양화의 대가이다.
작가는 좋은 그림은 개인의 소리가 아닌 사회의 소리여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림은 인간의 보편적 감성에 교감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한민족의 한과 꿈을 화면에 담고자 했고,
또한 우리의 얼굴을 그리고자 노력해왔다.
가난의 고통이 느껴지는 청계천변의 판잣집들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검은 하천과 비어 있는 어두운 판잣집은 사람들이 공존하기를 포기한 공간의 이미지를 풍기지만
당시의 우리의 감성과 얼굴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는 주로 역대합실이나 아기를 등에 업은 노인,
생활에 지치고 고단한 청계천 일대의 풍경 등을 대상으로어둡고 탁한 색채로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1964년 3월부터 한성 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해서 서울예술고등학교까지의 10년 남짓 한 시간을미술교사직으로 있으면서
이만익은 국전 3회 연속 특선을 했고 4회가 되었지만 추천작가가 되지 못했다.
관료적이고 폐쇄적인 국전의 아카데미즘이 팽배한 현실은 더 넓은 바깥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그의 예술적 욕망과 기대를 허망하게 만들어갔고, 결국 자기 자신과의 또 다른 처절한 싸움을 위해서
이만익은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파리 체류 2년여 동안 표현주의적 냄새를 풍겼던 작품 세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무거움과 어두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같은 전환은 주제에 있어서 뿐만아니라 브러쉬 스트로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명암이 깃든 드로잉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고 대신 화면은 압도적으로 평면화되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선의 기능을 되찾게 되었고 보다 단순한 색면의 대비로 색의 기능과 상징성도 얻게 되었다.
보이는 일을 화폭에 옮기는 일에서 보이지 않는 사념을 만들어내는 그림으로의 전환 계기를 터득하게 되었다.
화가 이만익은 대담해지기 시작한다.
유학 기간 동안 그는 대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배우면서도 자기를 찾기 위해 그들을 열심히 지웠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지원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주제를 찾고자 했다. 한 개인의 자화상처럼 한민족, 한사회의 자화상을 찾고자 했다.
그의 주제는 우리들의 삶과 전설과 역사 등으로 한없이 확대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멀리서 자기와 우리의 역사를 찾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의 눈망울에 촉촉히 스며있는 내밀한 역사의 차원, 곧 화가로서 그는 통찰을 통해 고유한 감성의 전통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우리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전승된 감성을 형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쉽사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작업이 요구되었다.
프랑스 유학이후 아류는 절대 안된다는 독자성에 눈을 뜬 화가 이만익은 "한국 정서의 표현은 서양인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며
한국적인 모티브인 어머니, 가족, 역사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그것을 자신의 화제로 삼고 작업을 진행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1978년 개인전에서 비로소 그만의 색깔을 갖춘 작품들을 내보일 수 있었다.
이처럼 빠르게 그림의 경향이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파리시절을 통해서 "만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그리는 그림" 속에 빠져있음을 깨닫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미술관에서 배우고 부수고 깨뜨리고 지우려는 인고의 과정을 통해서였다.
이만익의 그림은 우리역사의 삶에 깃들인 인물들으르 하나같이 관조하는 분위기다.
잔잔하게 미소띤 얼굴에는 기다림이나 그리움, 슬픔과기쁨이 엇살리고 기다림과 그리움의 연민 위에는 '충만한 침묵'이 초연히 머물고 있다.
그의 선은 굵고 힘찬 유기적인 곡선에다 색채는 원시적이면서도 미술적인 녹청 군청 산호색이 정제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선과 색은 표현적 차원이 아닌 상징적 의미이며 정교하게 계산된 필치와 '긍정적 시각'으로 선명한 회화효과를 추구해내고 있다.
삶을 찬미하는 마음에서 나온 장식성 또한 '정감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정돈시킨 것'으로 이만익 화풍에서 중요한 예술적 특징이 되었다.
전세계가 주목했던 영광스러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과 폐막식 전광판을 수놓았0미술감독 이만익의 88올림픽 판화..
마스게임과 어우러진 그의 작품들은 독창적인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우리의 역사, 설화가 빚어낸 흥미로운 이야기,
전통과 현대를 자연스럽게 융화시키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지구촌 세계인에게 증명해보였다.
한눈에 누구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본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큰 기쁨은 없으리라.
작가라면 누구나 이렇게 되고 싶어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초를 단단히 다진 뒤 뼈를 깍는 고통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여 한다.
고흐가 그랬고 피카소가 그랬다. 이만익도 마찬가지였다.
" 요즘 그림에서 인간은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현대 미술은 사람을 놀라게만 할뿐. 사람을 위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휴머니즘은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외투라고 생각해요"
그는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 이만익 그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의 원천엔 가족이 있다.
이 화백은 "내 작품의 초점은 인생의 어려움을 감싸주는 '외투'와도 같은 휴머니즘의 실천에 맞춰져 있다"며
"속이 빈 통에서 나는 웃음 소리와 같은 울림의 세계"라고 강조했다.
(MKCollection 엠케이컬렉션 이만익미술연구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