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적인 미학의 실험 -김종하
김종하의 작품세계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2기로 그의 생애를 구분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1956년의 파리 學時代를 중심으로 하여 그 이전을 전기로, 그리고 그 이후를 후기로 나누는 것이 그것이다.
대체로 그의 전기를 의미하는 40년대 전후에는 대체로 우리나라 60년대 전후의 작가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서구적인 미술이념의 도입기였다고 볼 수 있다. 김종하가 유학했던 37년대의 일본제국미술학교시대는 일본 자체로서도 하나의 모방의 시대였다. 이를테면 安井會太郞이나 梅原龍三郞와 같은 渡佛派 家들을 통한 인상주의화풍의 미술 이념, 그리고 田전治 를 통한 초현실주의화풍의 미술 이념들이 새로운 시대의 미술 운동으로 실험되고 있던 시대였다. 대체로 김종하는 후지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지적될 수 있으며, 1941년의 鮮展에 입상한 작품도 피사로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들이 짙게 풍기는 것이었다.
1956년에 작가는 결심한 바 있어 모든 가재를 정리하여 파리로 떠났다. 김환기, 남관, 김흥수 등이 이미 그곳에서 화가의 수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파리는 한창 앵포르멜의 물결이 휩쓸고 있던 시기였으나 김종하는 오리혀 이탈리아 고전주의에 심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동양인인 그로서는 어딘가 앵포르멜의 회화이념은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는 봇티첼리의 환상적인 작품에 주목하고, 그러한 미학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였다.
귀국 후 그는 이대, 서울대, 숙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화실만을 지켰다.
미술평론가 박 용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