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 추상 미술의 선구자, 한 묵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나 102년 동안 한국 근 현대미술사의 산 증인이었던 화가 한묵은 우리가 잘 아는 이중섭 화백의 절친한 친구로, 혼란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뒤로 하고 떠나버린 이중섭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기도 하다.
1932년 중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35년에 일본 가와바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후 44년에 귀국한 한묵은 강원도 고성 금강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는데, 당시 원산에서 살던 이중섭을 만났다. 이후 6.25 전쟁 발발 후 월남하여 부산에서 박고석, 이중섭 등과 함께 활동했다. 1953년 작품 ‘꽃과 두개골’은 당시 종군화가로 활동 할 때 중공 군 해골을 들고 와서 할미꽃과 같이 그린 것으로 전쟁의 폐허와 황량함을 느끼게 한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후 서울로 이주한 한묵은 오산 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55년에 홍익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및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하는 등 활동을 활발히 했으나 안정적인 교수직을 마다하고 196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뒤 계속해서 파리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그는 배웅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발사와 동시에 어디에 콱 박혀버리는 총알처럼, 돌아오지 않겠다. 그 동안 배운 것을 다 버리고 빈 그릇이 되어 떠난다’
1950년대 후반부터 대상을 생략, 변형하면서 추상미술을 탐구하기 시작한 한묵은 프랑스로 건너간 후 유화, 수채화, 판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본격적으로 추상미술에 몰두했다. 당시 파리 화단의 여러 경향을 받아 들이고 이용하여 자신만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그는 1969년 아폴로 호의 달 착륙에 큰 충격을 받아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우주 공간을 회화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늘, 땅이란 구분도 다 지구의 문제 아닌가. 이제는 공간 개념을 바꿔 우주를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고민 끝에 한묵은 캔버스 화면 속에 시간과 속도를 끌어들여 4차원적 공간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공간 연작들은 나선형의 소용돌이로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한 공간을 시각화 하고자 했는데, 우주적 시공간을 상상하며 바로 4차원적 공간감을 구현하고 있다.
이어 80년대 말부터는 ‘꿈’을 더하여 우주적 화면에 원초적이고 전통적인 이미지를 도입하고 먹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한묵은 과학이 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야 말로 예언자라고 했다. 뉴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형 회고전을 개최할 당시 그는 ‘예술은 광활한 들판이며 그 속에 자신의 존재는 너무나 부질없다’는 고백을 했다.
출처 : 고양문화재단 큐레이터 이지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