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의 작품세계

추억속의 자연(섬진강 둘레길에서) 53x40.9cm Oil on canvas

CREATOR 이황의 작품세계

글: 칼럼니스트 김 흥 준

형식을 배제한 비구상 화폭을 통하여 작품을 펼치는 이나 또는 사물 그대로의 형태를 순수하게 접수하여 캔바스 위에 미의 세계를 전개하는 이나 미술작품을 창조한다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창작 그대로의 CREATION일 수밖에 없다.
이황
CREATOR로서의 그의 세계는 한마디로 나이브 하기까지한 거의 순수무구.
자연 그대로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듯 잔잔한 물의 여행이라고나 할까. 비록 폭포를 만나는 흐름 일지라도 그의 흐름은 때묻지 않은 한 폭의 WATER COLOR다. 그것이 비록 파스테르 유화일지라도 그는 잔잔한 수채화다.
그의 작품 앞에서면 CLASIC MEDITATION의 선율처럼 극히 고전적 한줄기 시를 명상하는 철인의 숨결 까지를 느끼게 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훌훌 배낭을 지고 전원으로 떠나는 모습 .산을 보면 산을 만나서 좋아하고 물을 만나면 물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이황. 토속주 술방구리에 떨어지는 함박눈 송이를 떠 마시고 천진난만한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는 INSPIRATION덩어리. 아니 GREEN그대로의 자연이라고나 이름지어 주자. 푸르름이 계절을 따라 삼원색이나 설혹 갈색의 화폭으로 표현해 보여 줄 지라도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 또 다른 푸르름을 지나는 것처럼 그의 미술세계는 영원히 푸르름이라고 이름 지어 주자.
그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자연을 소재로 하여 평면적 구도위에 펼쳐진다고 보겠다. 짙은 어스름 속의 우수라고나 할까. 때로는 밝은 원색의 밑바탕으로 하여금 화면 전체를 강렬한 이질 감으로 압도 하지만 근원은 아침 햇빛의 타는 듯한 원색이 아니라 항상 황혼의 외로운 실루엣을 주제로 하여 펼쳐보이곤 한다. 또한 그의 소재는 국한된 정물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 전체에 어우러진 자연 그 자연을 관조하는 작가의 시각을 토대로 하여 있는 그대로의 미적자연을 표출해 보이고자 시도한다. 다듬어지고 데포르마시옹한 자연이 아닌 후박한 느낌의 자연 이라고나 할까. 얄팍한 모방의 시도를 초월하여 애써 고집하는 신 보수주의적 자연주의 작가로서의 이황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작품 세계위에 항상 홀로 서있게 하고 그 자신의 고독과 외로움 속에 스스로를 몰입하여 언제나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게 하는 우수의 작가라 말 할 수 있겠다.
간혹 푸르름 속에서 외줄기 길을 보여 줄 지라도 끝없이 혼자 가야 하는 고독. 눈 덮힌 강산이라 하여도 홀로 떠 있는 외로운 배 한척. 황혼의 물안개 피어나는 샛강 다리 위에서도 걸어가는 사물체 동물체라고는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외로운 다리...... 관객으로 하여금 홀로 서 있으면 물안개 그 자체가 끝없는 몽상의 세계로 이끌어 들여 이승이 아닌 저승의 끝까지 걸어 가야만 할 것 같은 피안 아니 레테의 강이나 굴원의 멱라에 까지 이어질 것 같은 아스라한 다리를 걸쳐놓은 화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끝없이 시도하고 고뇌하고 발버둥치는 CREATOR로서의 이황의 작품세계는 그 나름 대로의 새로운 미적 창조의 세계로 발 돋음 한다고 보아 장차 화단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서의 기대가 크리라고 본다.


추억속의 자연(섬진강 둘레길에서) 53x40.9cm Oil on canvas

마음을...

글: 아트라인 .취재 / 김 소 형 수석 기자

마음을 휘감는 그리움의 노래를.
묻혀질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이 수군대며 살아날 듯 하고 독백이나 방백처럼 나그네의 어떤 향수어린 곡조가 들려오는 듯한 그의 작품은 자연의 냄새.
추억 향수 같은 것이 배어나오는 듯하다. 우리는 추억어린 그 시절로 마치 여행을 하듯 화폭의 한점 한점에 회상의 날개를 편다.
 
세상을 바라보는 서정적인 눈으로 자연을 화폭 속에서 다시 되 살리고 있는 이황씨를 만났다. 어스름한 새벽 호반, 겹겹이 아스라하게 펼쳐져 있는 흐름 완만한 산들, 고즈넉한 들판, 산자락에 드문드문 서 있는 몇 그루의 나무 등 그가 보여주고 있는 풍경은 낯설거나 유별나지 않아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가다 어느 모퉁이에서쯤 언뜻 눈여겨 보아두었음직한 작고 아름다운 마을.
여행 중 시름에 잠겨 한번쯤 주저앉아 보았음직한 한적한 호숫가가 손짓하듯 놓여져 있어 ‘언젠가 이런 곳을 가본 적이 있는 것 같아’ 하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풍경들. 험준하거나 뾰족하지 않아 친근한 우리의 자연이 손으로 떠담아 내듯 화폭에 담겨 있고 수다스럽지 않은 호젓한 풍광이 은은한 울림으로 펼쳐져 있다. 그저 낭만적이고 시적이라는 표현만으로 그칠 수 있을까. 인물이 없어도 구불구불 뻗어있는 길과 묶여 있는 빈 배. 산 그림자를 통해 그의 그림은 자락자락 말을 걸어온다. 묻혀질 수 있는 작은 이야기 들이 수군대며 살아날 듯 하고 독백이나 방백처럼 나그네의 어떤 향수어린 곡조가 들려 올 듯도 하다.
그의 작품 속에 스미어 있는 자연의 냄새, 추억, 향수 같은 것, 분명 하지는 않지만 보다 연연하게 마음을 끄는 어떤 실루엣이 궁금하여 그에게 고향을 물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2살 때 서울로 왔다고 한다. 해방을 겪고 나날이 다르도록 변모해가는 서울 속에서 그의 고향은 아련한 옛 추억 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 했다.
잊어버린 것과 그것에 대한 .그리움 속의 풍경. 그는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지만 실상 그가 스냅한 풍경들은 현실 속에 못 박혀있는 제 풍경들이 아니라 그의 기억 언저리에서 떠올린 심상 속의 풍경들인 것이다. 그렇게 마음 속에서 물을 주고 키워낸 풍경들이 화폭 속에서 다시 살아나 그에게 새롭게 고향을 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지막하게 둘러쳐져 있는 정겨운 산이 호수 위에 제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으면 물 위의 그림자는 저 혼자라도 넉넉한 듯 하고 저만큼 혼자 지나가는 사공은 노젓는 소리가 방해라도 될까봐 소리 없이 풍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화면 속에서 다른 인물의 설정 없이 혼자 종종 등장하는 이 사공은 어쩌면 실제 작가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 되어진 모습 일 것이다. 풀섶 우거진 강가에 슬쩍 기대어 있는 빈 나룻배 역시 작가 자신의 감정 이입으로 쓸쓸하고 고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풍경들은 세월이 덧입히는 상처와 인고의 흔적 보다는 때 묻지 않은 영원한 동경에의 푸르름을 간직 하고 있어 젊게 느껴지는데 이는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또 슬프거나 기쁘면 그런대로 감정을 들어 내는데 숨김이 없는 작가의 소탈한 성품에서 비롯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바다가 참 좋아요 특히 서해바다. 내 그림이 정적이라고 얘길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내 그림은 많은 움직임과 소리들을 담고 있지요. 밀물이 빠지면서 그물빛 아른대는 모래밭에 소라나 조개껍질 들이 와글거리는 소리 풀밭에 벌레들 우는 소리 또 갈대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들....... 나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면서 그런걸 느낄 수 있고 잠시라도 옛 추억에 잠겨 행복해 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 작가의 몇 마디에 그의 그림이 그대로 용해 되어 온다. 그 위에 빛이 녹아 있는 듯한 밝은 미색을 바탕으로 저물녁의 들판이나 새벽 미명 속의 호숫가. 인적 드문 시골길 등이 묘사되어 있는 그의 그림은 날카롭지 않은 텃치와 잔영이 깔려 있는 형체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듯한 선의 흐름으로 가까이 바라보는 이들을 빨아 들인다.
한가닥 미풍이 훑고 지나 가는 듯 작은 술렁임들이 일고 있는 화폭. 작가 노트에서도 우리는 그 술렁임들을 읽을수 있을 것이다. ......... 이제부터는 가슴 마다 기인 밤이 열릴 것이다. 이 시간 가슴을 채우고 덮힐 하나의 작품을 찾아 나는 내일도 황토길 따라 나의 길을 떠날 것이다. 흰 구름 따라 갈잎을 따라.......
불면의 기인 밤들은 순수성을 지켜 나가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의 시간 들이며 내일 바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기약 하는 시간 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누구나에게 씨앗을 내리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가슴마다 라고 읊는다.
이렇게 욕심을 버린 마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갈 수 있다면 작가와 또한 우리가 바라는 세상도 멀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자연은 곧 생명이며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흔들림 없이 오직 산과 강 들판.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찾아다니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전업작가 로서의 충실한 자부심을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