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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의 작품세계

 

‌묘법 (描法) No. 12-781978Oil on Hemp Cloth182 x 227 cm

세계가 주목하는 단색화의 거장 - 박서보

글: 신항섭(미술평론가)

박서보, 그는 ‘야누스’적인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는 사회활동상에 있어서의 다양한 얼굴을 지녔대서 이같은 비유가 합당할지 모른다.
그 개인으로서야 화가라는 단적인 지칭이 더 없이 걸맞는 것이긴 하지만 그를 객관화시켜 놓고 볼 때 단순한 화가로만 이해하기엔 자칫 편견을 가져올 우려도 없지 않다. 그가 한국현대미술의 도입기에서부터 정착단계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크게 영향하였음을 미루어, 이는 작가라는 개인문제를 떠나 우리 화단에 하나의 ‘이름’을 형성케 한 핵심으로서의 비중을 결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삼 개인의 업적을 논하려는 뜻은 없다. 다만 모르고 있거나 단편적인 지식으로 인한 오해, 또는 어떤 선입견까지를 불식 시키고 넘어감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진실에 이르고자 함이다.
그는 화단에 본격적인 추상표현주의라는 새로운 양식의 미술운동을 이식시킨 첫 세대로서 더구나 구심체의 한 사람임을 일단 인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이해의 접근은 한결 수월해진다. 50년대 말 그러니까 57년도를 기점으로 한 추상표현주의는 그와 김창렬에 의해 우리 화단에 소개되고 있는 데, 6.25라는 민족적 비극의 현장을 체험한 젊은 그들로서는 종래의 ‘아름다움 추구’라는 회화의 본래적 목적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작가를 선언한 그에겐 참담한 현실을 의식할 때마다 들끓어 오르는 가슴을 시원스럽게 풀어헤쳐놓은 새로운 표현이 아쉬었고, 필경은 전후 세계화단을 압도하던 ‘액션 페인팅’의 그 화려한 표현기법을 불러들인 것이다. 그로부터 사실상의 우리나라 현대미술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로써 순수한 입장에서의 작가, 그와 병행한 운동가라는 양면성이 확인되는 셈이다.
아무튼 운동가로서는 차지하고라도 그 개인적인 작업을 논함에 있어서 그만큼 정력적인 활동을 보인 사람도 흔치 않으리라. 그는 외부 시선이야 어찌됐든 한 작가로서의 윤리성만은 절대로 지켜왔다. 그의 방대한 작업량이나 일관된 작업태도를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으리라.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작가적인 순수한 입장을 천명하기라도 하듯 최근에 와서 경기도 안성에 넉넉한 화살을 꾸며놓고 그림외적인 일을 일체 떠나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초기의 ‘앵포르멜’적인 요소를 훌훌 털고 소위 “묘법”이라는 명제가 따라다니는 독자적인 표현방법을 들고 나온 때가 67년도의 일이니까 벌써 20여 년 가까이 됐다. 그 20여년 동안의 일관성있는 작업으로 말미암아 작가적인 존재는 한층 탄탄해졌고 그림의 맛도 무르익어 배돈 살구처럼 깊어졌다. 하기야 그림외적인 일로 보람도 있었지만 굳이 그 개인적인 욕심을 내세운다면 부랑의 세월을 보낸 아픔이 없지 않다고 실토한다. 그 많은 시간을 작품과 대결하였더라면 오늘에 느끼는 초조감만은 없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한편으론, 모든 게 역사의 흐름을 타는 과정에서 운명적으로 거쳐야 할 업보이거니, 하고 자연의 뜻으로 돌린다. 그렇다. 그의 “묘법”의 정체도 다름 아닌 이같은 그이 자연관에서 기인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정경을 두고 볼 때 손과 ‘캔바스’의 선문답이라고나 할까. 차 한 잔을 선방에 놓고 마주 앉아 법문을 나누는 큰 스님과 사미의 관계처럼 적요한 가운데 끊임없이 화답하는 손과 ‘캔바스’의 ‘메카니즘’은 우리를 풍요로운 상상의 바다로 이끌어 간다.
그의 “묘버”은 얼핏 보기엔 단조롭지 그지없다. 그래서 첫눈에 그만 모든 게 드러나 버렸다는 실망감조차 맛보게 된다.
구름 빛깔일지, 아니면 퇴색한 한지 빛깔일지, 그저 담담한 한 가지 색깔의 ‘캔바스’ 바탕 위에 연속적인 사선이 연필로 그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급한 마음을 달래며 좀더 여유를 갖고 바라보면 은은한 발색이 주는 미묘한 매력에 응답하고 싶은 충동심을 느끼게 된다. 그 빛깔은 분명 순수한 ‘화이트’(white)도 ‘그레이’(Gray)도 아닌 3차색으로서 우리의 눈에 낯익다. 누군가는 ‘백자 빛깔’로 보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우리 눈에 결코 섧지 않은 색깔임에는 틀림없다.
그 바탕색은 꾸밈없는 선을 데리고 노니는 듯, 그저 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뒀다는 식이어서 어쩌면 해학성까지 담고 있어 짐짓 웃음기조차 머금게 한다. 그러나 그 천진무구한 선도 유아적인 조잡성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일정한 ‘리듬’과 지극히 절제되고 가다듬어진 구조성을 타고 있다는 사실로써 일단 행위의 무책임성에서 탈피한다. 우리 눈에는 ‘그 까짓 쯤이야’하고 대수로이 여겨지는 선 하나에 매여 그는 20여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물론 그 누구라도 그의 선을 흉내낼 수는 있따. 그러나 박서보적인 분위기며 그 맛을 고스란히 훔쳐낼 수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선뜻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그 누구든지 “묘법”과 꼭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어차피 박서보에게 우선의 자리는 빼앗긴 셈이니 모방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어쨌든 문제는 그의 선이 수학상의 점에서 갓 출발한 평범한 선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렇다면 그만의 선이 의미하는 게 대체 무엇일까? 그의 선을 구성하는 요체란 더도 덜도 아닌 자연이다. 그의 인생관이라든가 예술관은 자연과 밀착되어 그를 근거로 호흡하고 생동한다. 그의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으로서 우선 자연을 바라보는 심상을 살펴보는 일이 옳겠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란 한낱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즉 자연의 ‘원형질’을 떼어낸 자연의 일부분이란 것이다. 서양의 경우는 자연과 인간을 이원화시킴으로써 서로의 긴장과 대립을 가져오며,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획득하려는 반면, 동양에선 오직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순종만이 있을 따름이다. 자연에 순응치 못하고 인간인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서 비견하려 함은 도전일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순리에 역행하게 되어 무리를 빚게 되고 따라서 그 결과는 인간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일테면 인과응보를 내세우는 불교사상으로 귀착된다. 인간이란 어차피 자연에 귀납되리란 섭리에 따른다. 따라서 서양에선 주관과 객관을 분리, 혹은 양립시키는 이른 바 합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데 반해 동양에선 주관과 객관을 통합한 직관적인 해석을 가하려 든다. 동양사상은 곧 느낌을 중시한다고나 할까? 이렇듯 동, 서양간에는 결코 융합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박서보의 그림을 일단은 동양사상의 한 흐름 속에 있다고 구분해서 보려는 것이다.
합리주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려 하다간 아무 것도 손에 쥘 수 없을 테니까.
그는 동양인으로서의 본연을 되찾는 일에서부터 자신의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은 여러 차례의 동양문화권에의 여행으로 표현화되는 데, 요즈음 말로 우리 한문화의 “뿌리”를 찾자는 의도가 내포된 이 여행의 결과는 같은 문화권의 이웃 어느 나라와도 판이하게 다른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자긍케 되는 것으로써 “묘법”이란 오늘의 방법이 발상되고 있다.
소위 중국화나 일본화에선 인간의 재주를 다한 완벽한 기교에 치우치고 있으나 우리 전통 산수화에서는 이렇듯 치밀함이 논외되고 있다. 중국화나 일본화가 자연을 능가하려는 듯한 인간의 지나틴 욕심을 가상히 여기고 있음에 비해 겸재에 와서 비로소 완결되는 우리의 산수화에는 어느 적절한 곳까지 이르면 적당히 붓을 멈추는 호흡의 단절이 있음을 보게 된다. 흔히 여백이라고 말하는, 나머지는 미루어 짐작케 하는 상상의 여지를 두었다는 데서 독특한 멋을 찾을 수 있을뿐더러 이것은 곧 자연에나 어느날 문득 ‘캔바스’ 위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마치 꿈의 현실화처럼. 60년대 초반의 작품들에게서 이미 “묘법”의 색깔이 마련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예비였던 것이다. 순응하려는 소박한 인간의지를 나타내고 있음이겠다. 이러한 전통 회화관이 박서보의 “묘법”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가 동양사상을 체험론으로 인식한 일은 대학을 갓 졸업한 54년도에 경주로 여행 갔을 때다. 그때 경주 시내 한복판에 띄엄띄엄 산재한 왕릉의 형세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밋밋한 야산과 닮았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을 그대로 떼어다 옮겨 놓은 것 같은 그 자연에의 동화야 말로 인간과 자연의 일체화를 최선으로 여기는 동양사상의 한 표징임을 깨달았음이겠다. 죽음으로써 자신을 자연에 되돌린다, 함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무로 확인하는 일인 것이다. 박서보의 작업도 궁극적으로는 주체를 상실함에 그 뜻이 있따. 화폭에 유한한 자신을 담지 않음으로써 선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약 받고자 한다. 처음엔 그의 선이란 것도 그의 신체성과 결부되어 나타나지만 그 선을 물감으로 지운 뒤 그 위에 다시금 선을 그어나가고 또 물감을 덮고...하는 행위를 되풀이하다보면 어느새 선은 인위의 관여에서 떠나 ‘메카닉’한 자율성을 얻게 된다. 이때부터 선은 자연의 흐름을 타게 되고 그 흐름이 능동화 되어 급기야 앞의 일까지 내다보게 됐을 때 돌연히 흔적없이 멎음으로써 묘법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적인 과정에서 구조성이 발생케 되거, 따라서 맨 처음 출발한 선으로부터 차츰 덧쌓여온 서정미가 풍겨 나오게 된다. 그 서정미란 아릿한 공간을 형성한 화면의 깊이에서 발현되는 “묘법”의 설화성이기도 한다. 온화하면서도 심오한 발색 그 안쪽에는 무수한 언어가, 얘기가 숨겨져 있는 듯싶다. 이러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비록 시각적으로는 2차원적인 공간성의 한계에 부딪치지만 일단 거기에서 떠나면 화면의 내안에 이르는 ‘마음의 문’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의 “묘법”의 세계는 마음으로 두드려야 열리는 저 피안의 어느 곳 쯤에 있는지도 모른다.
선과 ‘모노톤’의 속삭임, 또는 귀엣말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묘법”이란 명제의 연작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언급한 대로 67년도의 일이다. “묘법”의 탄생 이면에는 10여년이라는 어두운 시대, 그러니까 ‘앵포르멜’시대라고 일괄해서 말할 수 있는, 지칠줄 모르는 젊음과 투혼이라고 해야 마땅할 왕성한 창작생활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자기만의 발성을 지닌 방법을 찾기 위해 무수히 번의한 그 외롭고 어두운 습작기야 말로 “묘법의”모태였던 것이다. 다분히 감정적이기만 했던 격양된 선이며 절규하는 듯한 붓자국이며, 우수에 찬 표정으로 구성된 ‘앵포르멜’시대의 작품들에게서는 무언가 다른 세계를 희구하는 자기불만과 폭발을 찾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할 길 없었던 것이다. 무언가, 어딘가 새로운 땅으로 도약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절망과 만나게 됨으로써 “묘법이란 신세계를 예감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