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2019, 대리석, 50x120x13
불사조가 되고 싶어, 영원히 죽지 않는 예술가- 전뢰진
글: 고종희(문학박사)
전뢰진은 평생 석조만 했으나 돌이 가지고 있는 재료의 한계를 그의 상상력으로 뛰어넘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드로잉이다. 새 등에 업혀, 물고기 등에 업혀, 전뢰진은 드넓은 우주를 날아다닌다. 그의 드로잉은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력의 씨앗이요 열매다.
작품과 마음이 일치하는 삶을 살다
부산의 관광명소 태종대에는 유명한 바위가 하나 있다. 한 해에도 수십 명이 세상을 등지는 이 바위에는 ‘자살 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조각가 전뢰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1975년 당시, 자살 바위를 걱정한 부산시장은 홍익대학교 건축자문위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조각가 전뢰진의 작품이 추천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전뢰진의「모자상」이 세워지면서 자살률은 급격하게 줄었다. 죽기 직전 조각상을 본 사람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조각상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구한 것이다.
조각가 전뢰진은 올해로 아흔을 맞이하는 한국의 대표 조각가다. 어릴 때는 줄곧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고,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도안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다음해 6․25전쟁 발발로 학업이 중단되었고, 1953년 고교 은사 홍일표의 권유로 조각을 시작하며 윤효중 교수를 만나 홍익대 조소과에 편입하게 된다. 그는 이것을 ‘운명’이라 말한다.
“행복을 위해 산다. 일이 생각대로 안 되어도 고민하지 마라. 그것이 행복이다. 운명대로 가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을 위해 운명을 저버리면 안 된다.”
그 후 전뢰진은 1956년 마포중학교 미술교사를 시작으로 1975년부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각과 교수를 역임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작품을 위해 쉼 없이 망치질을 해왔다. 그는 주로 모자(母子)・가족・여인・동물 등을 주제로 작업했다. 그의 작품은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보는 순간 소박함과 따뜻함, 사랑과 동심(童心)을 느낄 수 있다.
전뢰진의 훌륭함은 특별한 것에 있지 않음을, 무엇을 성취한 세속적 성공스토리에도 있지 않음을, 선생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평생 지속했음에 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삶과 작품이 일치”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을 보면 예술가의 삶과 인품을 알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 제자에 대한 사랑, 남녀의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전뢰진의 인생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삶의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
“가는 건 있지만 오는 게 없어도 괜찮아. 오죽하면 그랬을까. 봐줘야지. 그게 인생이야. 그게 본성이야.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지.”